쏘베트정권시대에  모쓰크와대극장 바로 곁에 있든 «쏘련여성사»는  쏘련 인민경제의 여러 분야들에서 일하고 있는 훌륭한 러시아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를 조선어를 비톳한 기타 여러 나라 말로 출판하였다.  «쏘련 여성>사 조선어과에서 일하는 나의 대학동창이경진에게는 특별히 일이 많았다. 러문으로 된 많은 러시야 여성들에 대한 논설들을  유식한 조선말로 번역하는데 특출한 재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가 조선에서 모쓰크와로 유학을 오기전에  평양 김일성종합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한것이 큰 도움이 된것이다. 따라서그는 같이 일하는 쏘련 고려인들이 번역한 이해하기 어려운 함경도사투리가 많이 섞인 조선말을 표준어로  편집해야 할 책임을 맡고 있었다.  물론  다른 일꾼들보다 월급도  훨씬 많았다.

그러면 그는 하루 일정을 어떻게 짰는가 ? 모쓰크와 교외의 도시 츄쁘리야놉까촌에 사는 그는  매일 직장에 나가는 시간이 2시간, 퇴근후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이 2시간이상 결국 출퇴근 시간이 많이 걸렸기 때문에 귀중한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매일 직장에 나가지 않고   번역원들이 번역한 많은 재료들을   자기 집에서 몽땅 편집한후 그것을 제때에 제출했다. 일이 태산같이 많았기 때문에 집에서 늘 밤을 새우며 일해야 했다. 그런데 일을 많이 하면 할수록  직장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쏘련 여성> 잡지를 받는 평양에서도 조선말수준이 높다는  호평을 했던것이다. 이것은 두나라간의 우호친선관계를 강화하는것이며  따라서 그는 자기가 하는 일은 영예로운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헌신적으로 일했다. 그와동시에 청춘시절의 건강상태는  자기가 늙어서도 보존되며 영원한 것이라고 자신있게  믿었기 때문에 여성사에서 생의 마지막 날까지 일하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차차 흰 서릿발이 내리고 머리칼이 조금씩 빠지기 시작했는데 이에 왜 관심을 돌리지 않았는가 ? 지금 생각하니 젊은 시절부터 해야할 건강관리에 대한 생각을 등한한 것이  그의 큰 잘못이였다. 그는 밤새도록 일하며 아침에 «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짖인다» 라고 생각했을 때 야 잠자리에 누웠다. 오래동안 낮잠을 자고 일어난후  어떤때는 조기운동대신에  뜰악에서  꽃을 심는 등 힘에 알맞는  육체노동을 하였다. 이렇게 그는 낮과 밤을 반대로 즉 밤에는 일하고 낮에는 잠자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그런데 늘 밤을새우며  아침까지 일하면서  그는  담배를  쉴새없이 계속 피우기 때문에 통풍이 잘 안되는 방안은 담배연기로 충만되었고 나중에는 내굴쏘임을 받은 그의  의복은 물론 심지어 바람벽에서도 담배연기 냄새가 났다.   밤에는 일하고 낮에는 주로  잠을 자기 때문에 밤과 낮이 헛갈렸다. 그의 친구인 나는 어느 땐가  그에게 잠은  밤에  자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는 내말을 귀등으로도 담아듣지 않았다

- 반드시 밤에 자야만 하는가, 생활상황에 따라 주어진 24시간을 내게 유리하도록 적당히 분배하면 된다 –라고 말했다. 따라서 그는  자연의 법칙을 위반하면서 지금과 같은 자기 청춘시절의 건강상태를 영원한것으로 여겼을뿐만아니라 심지어 자기는  늙지않는   영원한 존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세월은 계속흘렀다. 낮과 밤이 헛갈린 번역의 나날도 흘렀다.그는 장가를 갔다. 결혼식도 아무것도 없이 유태인여자 논나에게 장가를 갔고 그들 사이에는 아들과 두 딸이생겼다.건강한  경진이는 계속 일을 했고 혼자 벌었지만 식구들은 넉넉하게 살았다. 그런데 논나는 그와 동거하면서 경진의 사적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간섭도 하지 않겠다고 말했고 그야말로 완전한 자유를 주었다. 자기 생활 습관을 서로 상대편에게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들의 부부생활의 기본적인 합의였다. 

따라서 논나는  자기 독방에서 경진이가 담배를 피우겠으면 피우고, 그가 밤에 자건 낮에 자건 상관하지 않았다. 또 직장에서 그가 늦게 돌아오거나 혹은 직장에 나가지 않고  낮에는 잠만자며 집안일에 대한  무관심한 태도에 대해서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식사문제에 있어서도 논나는 그가 어떤것을 좋아하고 어떤것을 싫어하며 그가 식사를 하건 말건  이에  대해서도   무관심했고 보르쉬 등 자기가 먹는 양식을 아침, 점심, 저녁 때마다 준비했다. 논나는 식사후 태산 같은 식기들은 씻지를 않고 그냥 내버려두었다가 다음 식사때 필요할 때만 씻어 사용했다. 한마디로 말해서 살림살이에는 전혀 무관심했다. 그런데  내가  하나 이해하지 못한것은 경진이가 어떤 때는 갑자기  감기에 걸려 앓게 되면 논나는 의사를 부르지 않는 것이다. 논나는 자녀들을 양육하노라고 직장일은 하지 않았고   아이들을 데리고 어렸을 때는 공원으로 혹은 아동극장, 커서는 대극장 소극장 영화구경 등을 다녔다. 경진이는 휴일이오면      어떤 때는 자기 가족들과 함께  좀 멀리 떨어저 있는 월가 강변으로 자기가  이미 정해놓고 늘 다니는 낚시질터로  가는 일도  있었다. 그 어느 날이였다.  그날도 밤을 새우며 아침까지  여성사에서 출판해야 할 자료들의   편집을 겨우 끝냈다. 그것을 그날 아침에 제출해야 제때에 출판되는것이다.  시간을 보고 그는 놀랐다. 전기차 출발시간이 임박했든것이다.

그는 준비한 자료들을 시급히 가방에 넣고  정거장으로 막 뛰여 갔을 때 모쓰크와 행 전기차는 벌써 정거장에 서있었다. 그는 전기차 운전수에게 멀리서부터 손을 흔들며 2~ 3분 멎어 달라는듯  신호하면서 미친놈처럼 전력을 다하여  막 달렸다. 이윽고   전기차에 올라앉았을 때 그의 심장이 갑자기 심한 부담으로 막 뛰기 시작했고 얼굴색은 창백해졌다.겨우 여성잡지사에 도착하여 제때에 서류를  제출은 했지만 심장은 몹시 아팠고 때때로  숨이 막히군했다. 집에 돌아온 후 그는 병원에 가서 치료할 대신에 늘 시간이 부족한 그는 아픔을 참으며 여전히 밤을 새우며  일했다.세월은 흘렀다. 이경진은 쏘베트정권은   천년, 만년 나아가서는 그 이상 즉 영원히 존재한다는데 대해서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는 쏘련 공산주의사상을 믿었고  쏘베트정권을 지지찬양하는 시들을 많이 써서 쏘련여성잡지에는 물론 카자흐쓰딴 알마아따에서 출판되는 <고려일보>에도 자주 발표했다. 그리고 앞으로는    쏘련 공산당원이 되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그런데 쏘련공산당 20차당대회이후 쏘련에서는 자국의 경제체제에서 많은 결함들을 발견하였다. 즉  쏘련식 계획경제체제는 시장자유경제체제에 비하여 훨씬 뒤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시작된   뻬레쓰뜨로아카는 노동생산력을 제고하며   인민생활수준을 높인것이 아니라  결과적으로는  대실로 끝났고 이윽고 쏘련이라는 나라는  붕괴되고 말았다. 러시아와 북조선관계도 악화되었다.  평양에서는 잡지 <쏘련여성>을 거부했고  그 시기에 <쏘련 여성사>는 문을 닫게 되었다. 쏘련여성사 패쇄는 이경진에게 심한 정신적 타격을 가했다. 그날부터 실업을 당한 그는  수입이 없어진 것은 두말할것없고 얼마 안되어   생활은 극빈상태에 처하게 되였다. 이제는 돈도 벌지 못하게 되어  자기 가족을 먹여 살리지 못하게  되었다는 가슴아픈 생각이  주되는 원인이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는 자주 앓기 시작하였다. 

김종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