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릿다운 가수의 가슴깊이 스며드는 처량한 목소리는 한국가요의 독특하고 이름다운 선율을 훌륭히 전달하여 준다. 이 가수의 공연은 항상 순박하고 진심이다. 공연종목이 다양한데 한국 전통민요도 있고 지어는 널리 알려진 만화영화의 사운드트레크도 있다. 이 재능있는 가수의 형상이 어떻게 창조되었는가에 대해 우리의 주인공인 김 따찌야나 자신이 <고려일보>기자에게 이야기 하였다.

 

음악은 마음의 언어이다

이는 감정과 기분의 영역이며

이는 음악으로 표현된 마음의 생이다

 가수 알렉싼드르 쎄로브

-따찌야나는 어릴적부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나요?

-기억하건대 나는 항상 노래부르기를 좋아했어요. 그러니 물론 아동시절부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지요. 때문에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은 나의 어릴적 꿈이 실현된 셈입니다. 나는 우스베키탄의 타스켄트주 양기율시에서 태여났습니다. 내가 한살 되였을 때 부모들이 도시형 부락인 솔다트쓰끼로 이주했습니다.  이 부락에서 나의 아동시절과 학창시절이 흘러갔습니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서 성악을 배우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부락에서 <목란>이란 고려인 협주단이 창단되었습니다. 화목한 부부인 유 게라씸 스쩨빠노위츠와 강 아니씨야 드미뜨리예브나가 협주단을 지도했는데 그들은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에서 교사들을 초청했습니다. 교사들의 높은 직업적 수준을 특히 지적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분들은 우리에게 아주 친절하게 대했습니다. 경험있는 교사들은 나의 성악적 재능을 발견하고 그 재능이 활짝 피어나도록 도와주었지요. 우리에게는 무용, 성악, 기악 그룹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여러 곳으로 순회공연을 다녔으며 각종 콩쿨, 축제에 참가했습니다. 그 때부터 나의 음악생활이 시작된 것입니다.

-따찌야나의 성악재능이 언제, 어떻게 발견되였는지요?

-아마 열세살때인 것 같애요. 우리 가정에 성악소질이 있는 가족이 없었으니 모두에게 있어사서 이것이 뜻밖의 일이였습니다. 내가 이미 말했듯이 이에는 게라씸 스쩨빠노위츠와 아니씨야 드미뜨리예브나의 공로가 큽니다. 제가 직업적 예술가들에게서 배우도록 도와준데 대해 기회를 타서 두 분에게 깊은 감사를 표하는 바입니다. 이 부부는 시간과 힘을 아끼지 않고 모든 것을 다 부담했지요, 지어는 의상을 깁는것까지도 도와 주었습니다. 바로 그 분들의 덕분에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에 처음 가 보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 이것이 환상의 꿈이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한번은 우리 가무단을 평양에서 진행된 <4월의 봄>축제에 초대했습니다. 해마다 김일성 수령의 탄생일에 이 축제가 진행되였습니다. 잊을수 없는 이 방문은 아동시절의 꿈을 꼭 실현하고야 말겠다는 저의 결심을 더 굳게 하였습니다. 우리가 난생 처음 대 공연실에서 유명한 연예가들의 지도하에 공연하였습;다. 실로 큰 인상을 받았습니다!

-따찌야나의 부모들은 연예계와 아무런 인연이 없다고 하였지요? 그러면 자식들은?

-실지에 있어 저의 부모들은 음악과 연관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아들애 블라지슬라브는 제,옐레베꼬브명칭 공화국 에스트라다-서커스 콜레지 섹스폰과 2학년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누구를 창작적 선배로 간주하지요?

-저에게 있어서는 교사마다가 선배입니다. 그런 분들이 여러 명이 됩니다. 그것은 내가 음악의 각이한 방향을 시도해 보았거던요…특별히 누구를 짚지 못하겠습니다. 선배마다가 자기의 독특성을 가지고 있지요, 그러니 각자가 저의 생활에서 중요한 역할을 놀았습니다.

-따찌야나, 창작의 길에 대해 좀 이야기해 주십시오.

-1996년에 중학교를 필하고 함사명칭 타스켄트 음악전문학교 아카데미야 성악과에서 공부했습니다. 나는 운이 좋아 훌륭한 교사 나지라 할코트자예브나 카불로바에게서 배웠지요. 교사는 자기의 경험을 남김없이 저에게 몽땅 넘겨주었습니다. 그 교사에게서 배운 것이 많습니다. 나는 항상 그 분에게 고마운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공부하는 이러저러한 어려움이 있었지만 열심히 공부하여 최우등 성적으로 전문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이상에 지적했듯이 나는 여러 방향에서 노래를 불러보았다고 했는데 에스트라다도 예외가 아닙니다. 저의 에스트라다 선배는 김 일리야 쎄르게예위츠였습니다. 그는 재능있는 음악가이며 지휘자입니다. 선배는 귀중한 경험을 나에게 넘겨주었습니다. 나는 여러 콩쿨, 고려인들의 대 행사에 참가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창작활동이 시작되었습니다. 1999년에 출가하여 아들을 낳았습니다. 2002년에는 우스베키스탄 국립음악대학에 입학하여 카불로바 교사에게서 학업을 계속했습니다. 음악대학을 졸업하고 2006년에 알마티로 이주하여 와서 오늘날까지 이곳에서 살고 있습니다.

여기에 이주하여 와서 나는 알마티고려민족센터 <남성>무용단 단장 김 마리나를 알게 되었습니다. 마리나와 만나 함께 일하게 된 것이 행복이라고 봅니다. 마리나는 직업적 수준이 높은 연예가입니다. 우리는 무용단과 함께 각종 프로젝트를 실천하며 고려문화센터가 조직하는 행사에 참가합니다. 나는 큰 기쁨을 안고 독창가수로 여러가지 노래를 부릅니다. 

그런데 민족노래를 부를 때면 그 어떤 흐뭇한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그것을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니까요…

-음악이 따찌야나에게 있어서 무엇을 의미하지요?

-나는 노래와 음악이 없이는 자신의 생활을 상상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내가 사랑하는 직업입니다. 각자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 자신을 행복한 사람으로 여길 수 있다고 봅니다. 내가 노래를 부르기를 좋아하니 그런즉 내가 행복한 사람입니다!

-앞으로의 창작 계획은?

-솔직히 말한다면 아이디어와 새 계획이 많습니다. 물론 그것을 꼭 실현하고 싶지요. 아직은 그 비밀을 털어놓고 싶지 않습니다. 가까운 시기에 몇가지 프로젝트를 실촌하여 관람자들에게 기쁨을 줄 계획입니다.

-자기 민족의 문화와 전통을 보존하기 위해 젊은 고려인 세대에 무엇을 권고하고 싶습니까?

-우선 민족의 전통과 문화를 잊지 말라고 모든 고려인들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자식들과 손자들에게 전해 주어야 하며 우리 문화를 보존하기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들여야 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애독하는 <고려일보>기념해에 사원들에게 새로운 창작적 성과를 기원하며 신문이 앞으로도 오랫동안 발간되고 독자들의 수가 늘것을 바라는 바입니다!

-감사합니다, 따찌야나. 역시 창작적 성과와 모든 꿈이 실현되기를 기원하는 바입니다!    

정 지아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