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즈베키스탄으로 떠나기 전날인 금년 1월 14일, 건축가 겸 화가인 게오르기 리를 만나기 위하여 일요일 아침부터 부지런히 약속 장소인 Rozybakiev Street에 위치한 메가몰(Maga mall)로 향하였다. 전날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길에는 눈이 4-50cm 가량 쌓여 있었다. 그런 길을 걷다보면 신발은 물론 양말까지 다 젖어서, 매일 밤 숙소의 라디에이터에 신발을 올려두고 잠을 청하곤 하였다. 이곳 알마티는 제설작업을 따로 하지 않고 길가의 눈이 자연적으로 녹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택시를 타고 도착한 주말의 메가몰은 한국의 백화점과 같은 최신식의 쇼핑몰로 가족, 연인 등의 사람들로 붐볐다. 분잡한 쇼핑몰 내에서 환하게 반겨주는 게오르기 리를 만나, 베트남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지난 목요일 고려인 협회에서 잠시 마주쳤을 때처럼 그는 포근하게 맞이해주었다. 오전 11시가 조금 넘어 들어간 식당에서 그는 녹차를 주문하였다. 커피를 즐겨 마시는 한국의 문화와 다르게, 카자흐스탄은 식당에서 굳이 식사를 주문하지 않고도 차만 따로 주문하기도 한다고 한다. 본격적으로 그와 차를 나눠 마시며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1937년 10월 연해주에서 강제이주 당한 고려인들이 정착한 카자흐스탄의 남동부 도시인 우슈토베(Ushtobe)에서 1955년에 태어난 그는 1976년까지 그 곳에서 지내며, 한복을 입거나 방아를 찧는 등의 고려인 생활을 접했다고 한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머니의 손에서 자란 게오르기는 그의 어머니가 겪은 강제이주에 대한 이야기에 잘 모를 뿐만 아니라, 자신이 몇 세대의 고려인인지도 잘 모른다고 하였다. 그저 자신은 카자흐스탄에서 태어난 소수민족 중 고려인에 속하며, 고려인들이 잘 정착하여 생활할 수 있도록 도와준 카자흐 인들에 대해 감사하다고 거듭 언급하였다. 어렸을 때부터 그림에 흥미가 있었으나 돈벌이가 쉽지 않으리라 예상한 그는 일찌감치 건축을 전공으로 택하였다. 알마티 대학 건축공학과를 졸업한 후, 개인 건축물의 디자인을 주로하며 카자흐스탄 내에서 건축가로서 입지를 다졌다. 2004년도에는 그 우수성을 인정받아 인테리어 디자인 부분에서 수상을 하였다.(엘리드 돔 잡지) 2010년 이후부터 그는 본업과 동시에 그동안 열망하였던 그림 작업을 시작하였고, 미술 전시회와 연합 그룹전에서 참가하는 등 착실히 커리어를 쌓아오고 있다. 

게오르기는 2017년 3월 “Приходите в мой дом”(우리 집에 오세요)라는 개인 전시회를 열었다. 2017년은 카자흐스탄 내 한국인의 정착이 80주년을 맞이한 해로서, 그에 대해 감사함의 의미도 담았다고 한다. 그와 이야기를 하는 내내 이방인이나 정착민이 아닌 카자흐스탄인으로서의 자신을 강조하였는데, 과연 ‘우리(мой)’는 누구를 말하는 것이고 왜 이를 강조하여 전시회의 이름으로 붙인 것일까? 그는 작업이 ‘삶과 사회적 문제’에 토대를 두고 있다고 말한다. 태어나 22년간 생활한 우슈토베에서 겪은 고려인의 생활문화 양식과 노동, 어린 시절 카자흐스탄 친구와의 우정 그리고 오늘날 카자흐스탄을 비롯한 중앙아시아의 사회적 문제까지 자신의 삶을 아우르는 다양한 주제를 표현하였다. 그가 일례를 든 중앙아시아의 사회문제는 ‘투르키스탄의 레일로드’에 관한 것인데, 카자흐스탄 과 인접해있는 투르키스탄이 새로운 철도를 건설하면서 집창촌이 생겨난 것에 관한 것이다. 문물의 발전이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현지에서 자신의 삶에 대한 다양한 주제를 독일식 표현주의 양식을 결합하여 그만의 작품을 창조해내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1차 세계대전이후 1920년대 베를린에서 절정에 이르렀던 독일 표현주의 미술은 격동적인 사회 현실의 인상을 주관으로 격렬하게 연소시켜 강렬한 원색을 사용한 것이 특징이며, 대표적인 작가로는 에른스트 키르히너, 에밀 놀데, 오스카 코코슈카 등이 있다. 그의 작업은 한 작품에 보통 2일 혹은 더 짧은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이는 상대적으로 다른 화가에 비하여 꽤 빠른 작업 시간에 속하는 것이다. 이는 독일의 표현주의 화가들이 격정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쏟아 주제를 승화시켰던 방법과 같은 것이다. ‘방아를 찧는 작업’이나 ‘초가집 형태’, ‘한복차림’의 모습에서 간간히 고려인의 생활문화를 엿볼 수 있었지만, 이보다는 오늘날 그가 느끼고 바라보는 카자흐스탄의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주제의 비중이 훨씬 높다. 이주한 고려인으로서의 정체성 보다는 이미 토착화된 카자흐스탄인으로서의 의무감과 충성심을 갖고 있는 그, 현재의 문제에 치중하고 있는 그의 고민과 작업에서 그가 말하는 ‘우리 집’에서의 우리가 고려인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작가 스스로도 카자흐스탄의 사회에 잘 토착화되어 있는 삶에 대해 만족해하였다. 이제는 자신의 뿌리인 한국인에게 카자흐스탄인의 ‘우리 집’을 자랑스럽게 소개하는 게오르기에게서 안심과 고마움울 느끼는 한편으로 우리에게서의 ‘떨어져 나감’이라는 상실감이 밀려온다. 

전선하(Sophy Seonha Jeon)

홍익대 미술학과 예술학전공 박사과정 수료

(HongIK University Ph.D. Candidate, Department of Fine Art, Art Theory and Criticis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