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2월말에 깝차가이로 하루 출장을 떠나려고 하니 집안 식구들이 반대 하였다: <요즘 자동차도로에 살얼음이 덮여 위험한데 엄마는 왜 먼 길을 떠나려고 하세요? 알마티시내에서 주인공을 찾을 수 없나요?>. <물론 시내에도 있지만 내가 꼭 이야기하고 싶은 주인공이 있단 말이야…>- 나는 더는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는듯이 말을 이렇게 끊었다. <그러면 살얼음이 녹은후에 좀 늦게 떠나세요> - 딸애가 말했다. 

나는 식구들의 걱정도 이해할 수가 있었다. 젊지도 않는 나이에 한 겨울에 먼 길을 떠나려고 하니 말이다. 그리고 또 신문사가 출장을 보낸 것도 아니었다. 내가 자청해서 나선 것이었다. 나는 그 여성에 대해 이미 오래전부터 기사를 쓰려고 했는데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매번 접어두게 되었다. 그 주인공은 바로 깝차가이시 고려인소수민족연합 김 갈리나 알렉쎄예브나 회장이다.내가 가는 도중에 몇번이나 전화를 하며 걱정하던 갈리나 알렉쎄예브나는 연합 사무실이 자리잡은 <바이쩨레크>비즈니스센터에 당도할 무렵 마중하러 나오는 중이였다. 깨끗하고 아늑한 사무실에 들어서자 우선 편안한 감이 느껴졌다. 책상에 마주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던 몇몇 아가씨 (후에 알게된바에 의하면 그중에는 가정을 이룬 젊은 여성들도 있었다)들이 일어서서 한국어로 공손히 인사를 하였다. 갈리나 회장은 그들이 한글을 열심히 배워 앞으로 한국어교사로 될 것을 희망한다고 하면서 그들에게 나를 소개했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고려일보>의 역사를 미래 한글 교사들에게 꼭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 간단히 이야기해 주었다. 물론 금년에 신문이 창간 95주년을 맞이하게 된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저 애들이 지금 열심히 배우는 중입니다. 나역시 가능한 많은 것을 가르쳐 주고 싶지만 교사로서 나에게 아직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그래서 총영사관에 한국으로 연수를 보내달라고 간청한 것이지요 – 갈리나 알렉쎄예브나가 이야기 한다 – 결과 지난해에 5개월동안 한국에 가서 이화여대에서 연수를 하였습니다. CIS의 다른 나라들에서도 교사들이 왔는데 그중에서 내가 가장 나이가 많아서 좀 부끄러운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열심히 배웠습니다. 내가 배운 것을 젊은 교사들에게 알려주겠다는 생각이 앞섰기 때문입니다.갈리나 알렉쎄예브나는 주위 사람들을 배우도록 설득시키면서 자신도 같이 배운다. 그는 이상에 지적한 미래의 교사들과 함께 알마티에 있는 글로벌 아카데미야를 다니면서 정신산수, 영어 (한국방법논에 따라)를 배웠다. 

직장을 지키면서 사회사업에 몸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젊은이들에게는 다 자기의 기본 직업이 있다. 그중에는 미용사, 인지니어, 법률가가 있다. 그런데 김 갈리나 알렉쎄예브나는 그들에게 우선 모국어, 민족문화, 전통에 대한 애착심을 배양하고 있다.

-사람들이 보통 25세까지 꼭 해야 할 일이 있다고 하는데요 내가 그것을 성과적으로 해냈다면 그것이 갈리나 알렉쎄예브나의 공로입니다 – 박 이리나가 말한다 – 갈리나 알렉쎄예브나는 목적지향성이 있고 너그러운 심정을 가진 분입니다. 그리고 목적을 세우면 그것을 꼭 실천하고야 마는 성격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자연히 그를 따르게 됩니다. 

이 이야기를 하는 이리나는 이미 고등지식을 소유하고 가정을 이루고 자식 둘을 낳았다. 지금 인지니어로 일하면서 한국어를 열심히  배우는 중이다.

우리가 사무실에서 담화하고 있을 때 시청 내부문제담당부 누를란 악꼬이싀 부장이 들어왔다:

그는 우리와 인사를 나누고 어디에 갔다가 지나가는 도중에 잠간 들렸다고 하면서 물어보았다:

-갈리나 알렉쎄예브나, 별일 없는거지요, 무슨 문제점이 있습니까? 

갈리나 알렉쎄예브나는 시청이 항상 배려를 돌려주어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고 신문사에서 기자가 찾아왔다는 말을 하자 누를란이  망했다:

-잘 찾아오셨습니다. 시청이 조직하는 행사에 김 갈리나 알렉쎄예브나의 집단이 참가하지 않는 때가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갈리나 알렉쎄예브나를 언제나 믿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약속을 하면 꼭 지키니까요… 

시청 대표의 이런 말을 들으면서 깝차가이시 고려인소수민족 연합이 시청과 밀접히 협조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갈리나 알렉쎄예브나 역시 시청이 그의 부탁을 항상 들어준다고 말했다.

-갈리나 알렉쎄예브나, 어떻게 사회사업과 인연을 맺게 되었는지요? 

-최 이리나 왈렌찌노브나가 오랫동안 고려인연합을 맡고 있었는데 저더러 맡아달라는 말을 여러번 했습니다. 그런데 그 때는 제가 하는 비즈니스도 있고해서 인차 승낙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긴 부회장으로서 연합의 일에 항상 관심을 두고 힘이 자라는대로 도와주었지요. 그러다가 2012년에 깝차가이시 고려인소수민족 문화연합을 맡게 되었습니다. 

-무엇을 우선적인 과업으로 내 세웠습니까?

-물론 할 일은 많았지만 나는 한국어 교육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원아의 나이로부터 시작하여 성인들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모국어를 배우도록 하는 것이 나의 꿈입니다. 저역시 그 과정에 한국어를 배우고요…

김 갈리나 알렉쎄예브나는 이 꿈을 실현하기 위해 힘과 시간을 아끼지 않는다. 그가 이 일에 전심전력을 다 한다는 것은 소문만 듣고 알고 있는 것이 아니다. 김 회장은 한글교육과 동시에 깝차가이시의 성인들이나 아이들에게 모국 그리고 민족전통과 문화를 더 많이 알리기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다. 고려인협회나 알마티시 고려민족센터가 진행하는 대행사나 고려극장에 공연이 있을 때면 갈리나 알렉쎄예브나가 버스를 임대하여 사람들을 태우고 온 것을 본 일이 한두번이 아니다. 그리고 어떤 날은 알마티에 온 김에 시간을 최대한 이용하여 아이들을 여러 곳에 데리고 다닌다. 한번은 3.1절 행사가 알마티시 한국교육원에서 예정되어 있는 날이었는데 그날 갈리나 알렉쎄예브나는 그 행사에 앞서 아이들에게 <에플 타운>의 <스마트 빌딩>을 구경시켰고 다음 불교사원도 데리고 갔었다고 한다. 정말 시간을 쪼개어 움직인 것이다. 3.1절 행사의 날에 작싈라크 몰지르가 아동그림콩쿨에서 일등상을 받았을 때 갈리나 알렉쎄예브나의 기쁨은 끝이 없었다. 하루에 그렇게 바쁘게 움직였지만 아이들이 그 날 많은  알게 되었다는 것을 생각을할 때면 피곤도 느껴지지 않았다. 

-사회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여러 사람들과 자주 교제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사람들과 잘 사귀는 것도 한가지 재간이라고들 하는데 갈리나 알렉쎄예브나는 본래 그런 성격인가요?

-아마 사교성은 어머니에게서 넘겨받은 <유산>인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사교성이 많았는데 아마 이발사의 직업도 우연히 택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발사들은 날마다 사람들과 사귀게 되니까요. 그런데 미용실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어머니에게 가슴아픈 일, 마음속에 있는 말을 다 털어놓았거던요, 아마 믿음이 갔던 모양입니다. 가능한 경우에는 어머니가 충고도 주군 했습니다. 물론 깝차가이시에서 어머니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것도 그럴것이 37년동안 깝차가이에서 이발사로 일했으니…

...갈리나의 아버지가 전임됨에 따라 가족들이 깝차가이로 이주하게 되었다. 아버지는 동력공인데 이르띄스게스스뜨로이 산하 체계에서 동력기사로 일했다. 갈리나는 공업대학 공업민간 건설과 인지니어-설계부를 필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건설분야가 꿈이여서 입학한 것이 아니라 그 때 그것이 유행이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가 수학에 취미가 있었으니 공업대학으로 가기로 했을 수도 있다.

갈리나 알렉쎄예브나의 집에서는 음악을 배우는 것이 전통으로 되었다. 그 자체도 바얀을 배웠고 맏아들은 음악학교 합창과, 둘째 아들은 음악학교 피아노과를 필했다. 음악을 전공하라는 것이 아니고 음악은 항상 우리 인생의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고 갈리나 알렉쎄예브나는 생각하고 있다. 아들 둘은 다 대학을 졸업하고 비즈니스에 종사하고 있다.

지금 깝차가이 한국어 학교에는 6 – 12 – 15세의 아이들이 각각 배우는 한글반이 있고 성인들이 배우는 야간반도 있다. 야간반에만도 근 15명이 다니는데 이것은 그들을 가르치는 김 회장의 공로이다.

-아이들에게 한글을 배워주는데 누가 가장 큰 도움을 주고 있습니까? 

-물론 알마티 한국교육원이지요. 교육원 원장님들이 저의 부탁을 들어주면서 자원봉사단원들을 보내줍니다. 먼길을 다니면서 우리 아이들을 가르치는 봉사단원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얼마전에 또 반가운 소식을 접했거던요, 3월에 또 한글교사들을 보내주고 8월쯤에는 사물놀이와 무용도 가르칠 선생들을 보내준답니다 – 이 소식을 전하는 갈리나 알렉쎄예브나의 눈은 유난히 빛났다.

김 갈리나 알렉쎄예브나가 모국어 교육에 관심이 많고 민족문화와 전통을 더 널리 알리려고 하는 것을 총영사관이나 한국교육원이잘 알고 있기 때문에 될 수 있는대로 깝차가이 한글학교를 도와주려고 힘쓰고 있다. 갈리나 알렉쎄예브나가 손자들에게 단군과 세종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고 손녀는 인선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아도 모국의 역사나 전통에 얼마나 관심이 있는가를 알 수 있다. 그는 또한 가능한 깝차가이 학생들을 한국에 더 많이 교육하러 보내려고 힘쓰고 있다. 현재 전라남도에서 깝차가이 학생 4명이 공부하고 있다.김 갈리나 알렉쎄예브나는 여성의 날 전야에 선물준비, 야회조직에 바쁘게 보내고 있다. 게다가 또 그는 시청 사회협의회 회원으로서 시청의 일을 적극 돕기도 한다.

해마다 3월 8일이면 갈리나 알렉쎄예브나의 집안은 꽃향기가 그윽하며 손군들의 웃음소리로 떠들썩하다.

 

남경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