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인청년협회. 1990년말에 카자흐스탄고려인협회는 고려인 소수민족의 장래 리더들의 당당한 젊은 후대를 양성하는데 심중한 주목을 돌리었다. 고려인청년협회는 그당시 카자흐스탄고려인협회 회장이였던 채 유리 안드레예위츠의 지지하에 1998년 6월 28일에 창립되었다. 카자흐스탄고려인협회 청년센터의 규정이 강구되었고 집행위원회가 선거되었다. 진 왈레리가 청년단체의 첫 회장으로 되었다. 청년협회의 활동은 고려인 청년들을 단결시키며 휴식을 조직하는데 돌려졌다.

2001년 4월 28일에 제2차 공화국 고려인청년 포럼이 진행되었는데 이는 카자흐스탄고려인협회 청년센터의 구조적 세부조직의 시작으로 되었다. 한 마리나가 청년운동의 리더로 되었다. 카자흐스탄고려인협회 지역별 청년센터 형성을 위한 사업이 4개월간 계속되어 2001년도 9월에 이르러 아스타나, 까라간다, 꼬스따나이, 우스찌-까메노고르쓰크 도시들에서 청년단체가 적극적으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카자흐스탄고려인협회 청년센터는 2001년 6월 29-31일에 깝차가이시에서 지역별 청년센터 회장들의 대회를 진행하였다.역시 이 대회에서 리더의 행동형성 트레닝이 조직되었는데 거기에 <악꼬르드>사회발전 센터 회원들이 참가하였다.카자흐스탄고려인 제 7차 비정기 회의에서 창년센터 운영의 형태가 변경되었다. 청년운동의 리더도 바뀌었다. 오 쎄르게이가 리더로 되었다.  2002년 4월 26일에 알마티에서 고려인청년 제 3차 공화국 포럼이 진행되었다.2003년 5월 17일에 카자흐스탄 고려인청년 리더들의 제 1차 국제포럼이 진행되었는데 12개의 나라 대표들이 거기에 참가했다. CIS 나라들과 기타 외국의 고려인 청년단체들의 협조체계를 조성하는 것이 포럼의 기본 목적이었다. 2004년 5월에 고려인 청년들의 제 5차 공화국 포럼이 진행되었는데 그 포럼에서 김 왜체슬라브가 카자흐스탄청년단체의 새 지도자로 선거되었다. 카자흐스탄고려인청년 단체의 첫 지도자 오 쎄르게이가 단체발전에서 결정적 역할을 놀았으며 다음 김 왜체슬라브가 그 사업을 성과적으로 계속했으며 그후 후임자 김 제니스에게 지도자의 직책을 넘겨주었다. 2014년부터 오늘날까지 김 이고리가 청년단체를 지도하고 있다. 그 기간에 여러가지 범위의 많은 프로젝트가 실천되었고 천여명의 젊은이들이 조직자적 및 리더적 실력을 얻게 되었다.

청년단체는 알마티시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카자흐스탄의 15개의 지역에 있는데 즉 아스타나, 까라간다, 우랄쓰크, 제스까스간, 우스토베, 심껜트, 크슬오르다, 알마티주에도 있다. 모든 분회들의 구조가 비슷하지만 분회마다 특점이 있다. 그것은 전 공화국 프로젝트외에 지역별 프로젝트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분회들은 질적 성원으로만 서로 차이가 나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프로젝트도 다르다. 그렇게 함으로서 청년단체마다가 청년단체의 유기적 부분으로 된다.카자흐스탄청년운동이 존재하는 기간 카자흐스탄청년들의 발전과 지원을 위한 많은 프로젝트가 실천되었다. 그중에는 1998년부터 실천되는 공화국 장학금 제정 콩쿨, 2002년부터 실천되는 공화국학생 콩쿨 <소년 리더>가 있고 역시 2002년부터 카자흐스탄청년단체는 <고려일보>지상에 청년들에 대한 자료들을 싣는다. 또한 2004년부터 취업프로젝트 <전문가>, 2005년부터 지능 쇼 <나와 한국>, 2010년부터 지능 쇼 <우리 카자흐스탄>이 진행되고 있다. 2010년부터 언어, 교육, 관광 프로그램에 따라 학생들과 대학생들을 한국으로 보내고 있다. 그리고 2011년부터 한국영화제를 진행하며 2015년부터는 <개성>프로젝트, 2016년부터 인터넷 프로젝트 Vine <Pabi guys; 역시 2016년부터 K-POP ST R.KZ 축제가 진행되고 있다. 카자흐스탄청년협회는 자립적으로 또는 카자흐스탄고려인협회의 지원하에 몇가지 대 행사를 진행하였다. 예를 들어 2005년에 CIS 나라 고려인 언론계 제1차정보포럼, 카자흐스탄에서 고려인정주 70주년과 80주년 기념행사, 2010년에 국어연구 카자흐스탄-한국 포럼 진행에 청년협회가 적극적으로 참가했다. 카자흐스탄청년협회는 협회 활동 기간에 카자흐스탄 청년들과 CIS 나라 청년들의 참가하에 많은 국제 및 공화국 포럼을 조직진행하였고 알마티시 의회 대의원 선거전 본부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가했다. 고려인 청년들은 국가 사회 주문 실천에도 참가한다.카자흐스탄고려인 청년협회는 카자흐스탄고려인협회의 불가분한 부분으로 되여 있다. 청년협회는 19년 존재이래 공화국 단체들의 수준을 보였다.

수백명의 청년열성자들이 카자흐스탄청년협회의 학교, 사회적 의의가 있는 프로그램, 프로젝트, 행사의 학교를 경과했다. 카자흐스탄청년협회가 활동하는 전 기간에 전 나라의 수천명의 젊은이들이 청년운동에 망라되었는데 게다가 고려인 청년들만 망라된 것이 아니었다. 적극적 생활입장을 가진 ㅇ젊은이들은 누구나 이 운동에 가입할 수 있었다. 고려인청년협회와 지역에 있는 분회들은 사회적 의의가 있는 모든 프로젝트와 프로그램 실천에 참가하고 있다.카자흐스탄고려인들의 과학기술협회 <과학>. <과학>협회는 15개 나라들의 이와 같은 협회와 함께 국제 한인학자 및 인지니어연맹에 속하는바 그의 본부는 서울 한국)에 있다. 처음에 CIS 나라들의 모든 과학기술협회들이 모스크바에 본부를 둔 과학기술협화 연맹에 단합되였었다. 2002년부터 <과학>과학기술협회의 발기에 따라 고려인들의 기술협회 연맹이 두개의 협회로 나뉘었는데 이는 유럽 및 중앙아시아 방향이다. 게다가 중앙아시아 과학기술협회연맹은 알마티에 기지를 두고 있다. <과학>기술협회에는 공화국 고려인 학자들을 적극화하는 사업외에 중앙아시아의 과학기술협회들의 사업을 조정하는 과업도 말겨졌다.협회가 1991년에 형성되었는데 강 웨,엠., 최 에.이., 박 이.떼., 유 웨.까 및 기;타 학자들이 협회의 시초를 닦아놓았다. 회원들이 580명이 되는데 그중에는 노동영웅이 1명, 국가상 계관인이 5명, 공훈활동가들이 2명, 각종 아카데미 원사들이 16명, 박사가 61명, 학사가 185명이다. 과학기술연합에서의 사업은 6개의 섹치야 즉 물리-수학, 화학-기술, 의료-생물학, 농업 그리고 기술학 및 사회학 섹치야별로 진행된다. 협회회장이 지도하는 협의회가 과학기술협회의 활동을 지도한다. 

<과학>기술협회의 기본 과업:

-카자흐스탄공화국 과학기술 발전의 새로운 모델을 실천함에서 과학, 기술, 실습 분야에서 고려인 학자들의 단합;

-과학과 생산의 우선적 영역에서 도입할 수 있는 구조조성; 협회 회원들 특히 젊은 학자들의 창작적 적극성 발전과 새로운 선진 기술과 연구 실천에 협조;

-회원들 사이에 그리고 국내와 외국의 이상과 같은 협회 사이에 과학기술연계 설정 및 발전; 고화국과 국제공동체에서 과학기술정책의 우선적 방향 그리고 과학 및 새로운 기술 분야에서 국제 협동화와 통합 확대에 관한 국제 및 공화국 컨퍼렌서, 심포시움, 세미나 진행;

-한국 과학 및 기술 연맹의 범위에서 활동조정.협회는 일년에 네번 <과학기술협회 <과학>잡지를 발행하며 정기 세미나를 진행하며 자연학 및 사회인문학에 관한 공화국 및 국제 컨퍼렌서를 조직한다.<과학>은 과학기술협회의 지지하에 일부 서적과 모노그래프를 발행하였고 카자흐스탄고려인정주 80주년의 해에는 기초적인 노작 – 카자흐스탄고려인 백과사전을 발행하였다.<독립>유공자후손회 사회연합. 후손회는 1998년 4월 22일에 등록되었다.정추 울라노위츠가 후손회의 첫 회장이었다. 2001년 4월부터 2017년까지 교육학 학사, 서울에서 있은 3.1운동 참가자, 조선영웅 계봉우의 손자 계 니꼴라이 제니쏘위츠가 후손회를 지도했다. 고려인들에게 민족문화와 정신적 유산의 기본 세그멘트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킬 목적으로 소수민족의 역사문제들을 고려인들에게 알려주는 것이 후손회의 활동의 기본 방향이였다.1998년부터 시작하여 알마티에서 카자흐스탄한인회, 알마티 독립유공자후손회의 주최로 그리고 주알마티 한국 총영사관의 후원하에1919년에 서울에서 일어난 3.1운동과 조선독립을 위하여 싸운 투사들을 기리는 순국선열의 날 (11월 17일)에 즈음한 행사가 해마다 진행된다. 이름있는 조선독립 투사들의 초상화가 찍힌 달력을 해마다 발행하는데 그 투사들의 후손들이 중앙아시아에서 살고 있다. 5만장의 달력을 전 카자흐스탄, 키르기즈스탄, 우스베키스탄에 무료로 배포한다. 후손회가 아래의 소책자들도 발행하였다: <최재현>(알마티, 2001년); <민긍호> (알마티, 2003년); >이동휘에 대한 이야기>(알마티, 2003년); <조선의 영웅들>(알마티, 2005년); <비극적인 황당무계의 나라에서 생활>(알마티, 2008년); <고려인들> 소책자 7편을 2만 8천부 발행하여 역시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우스베키스탄 (2011-2016년)에 무료로 나누어 주었고 계 니꼴라이의 가요가 녹음된 오디오 앨범<말을 하며 쓰며 노래하며 믿는다>(알마티, 2014년)도 제작하여 나누어 주었다.계봉우, 황운정, 이동휘, 최계립 (최봉설), 홍범도, 민긍호, 최 뾰뜨르 쎄묘노비치 (최재현)의 후손들이 후손회의 회원들로 되여 있다. 한국에서 공인을 받은 이 민족영웅들 외에 카자흐스탄에서는 고려인 소수민족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저명한 조선애국자들의 후손과 친척들이 살고 있다: 김-스딴께위츠 알렉싼드라 뻬뜨로브나, 김 미하일 미하일로위츠, 남만춘, 황하일, 최성학 (최 빠웰 뻬뜨로위츠, <스깐달렙쓰끼>), 최고려 (최 니꼴라이 막씨모위츠). 후손회의 세번째 회장이였던 계 니꼴라이 제니쏘위츠가 2001년부터 2017년까지 카자흐스탄공화국의 독립유공자후손회의 활동에 큰 기여를 하였다.현재 <독립>후손회를 세명이 관리하는데 조선영웅 안철의 손자 안 스따니슬라브(1974년생)가 회장이다. 그리고 계봉우의 증손녀이자 계 니꼴라이의 딸인 계 이리나 (1984년생)가 부회장이고 조선영웅 황운정의 손녀 황 라리싸(1952년생)가 부회장이다.또한 현재 카자흐스탄에서 살고 있는 한 알라 꼬노노브나 (최 뾰르 쎄묘노위츠의 손녀); 베께노브 마라트 아가랄로위츠, 강 이고리 아파나씨예위츠 (이동휘의 증손자들), 민 알렉싼드라 꼰쓰딴찌노브나 (민긍호의 손녀); 계학림 (하리똔 보리쏘위츠 – 계봉우의 아들; 최창혜, 최 마이야 이르쎄노브나 (최계립의 손자와 손녀); 황마이 운제노위츠 (황운정의 아들)도 조선의 영웅의 후손들이다. 카자흐스탄에는 조선민족영웅의 손자와 증손자 근 200명이 살고 있다. 그들은 일제 식민제 통치를 반대하여 싸운 투사들의 추억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김 게르만 니꼴라예위츠 – 역사학 박사,

 건국대 (서울)역사강좌 교수, 

알-파라비 카자흐국립대 한국학센터 소장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