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S 고려인의 러시아 이주는 1864년 1월 연해주 당국의 이주허가를 받은 수십 명의조선인 농민이 러시아 극동지방 남(南)우수리스크 지역으로 건너와 ‘티진하’에 첫 조선인 마을을 개척하여 정착한 것을 시작으로, 이후 조선인의 이주가 급증하여 1920년대에는 이주민 수가 20여만 명에 이른다.

이들 대부분은 생계를 위한 이주민이지만, 이 논문은 2012년도 정부(교육과학기술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일반공동연구지원사업임.  정덕준, 카자흐스탄국립대학 초빙교수/ 김 게르만, 카자흐스탄국립대학 교수이에 대해서는 김 게르만, 한인 이주의 역사(박영사, 2004); 윤인진, 코리안 디아스포라:재외 한인의 이주, 적응, 정체성(고려대출판부, 2004); 김필영, 소비에트 중앙아시아 고려인문학사(강남대출판부, 2004) 참조. 350 연해주 지역에 독립운동의 근거지를 마련하기 위해 건너간 지사들도 적지 않았으며,그들은 연해주(원동)에 자리를 잡고 러시아혁명에 가담, 소비에트 정부가 들어서는데 기여한다. 그러나 1937년 스탈린 정부에 의해 연해주 지역 이주 조선인은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강제 이주되고, 현지에서 공민권 제한과 거주지 제한 등 갖가지 차별을받으며 정착한다. 이러한 민족 차별은 스탈린 사망 이후까지 지속되다가 소비에트연방 해체 이후 비로소 자유를 되찾지만, CIS 국가들이 민족주의 정책을 강화하면서 중앙아시아 지역 고려인들은 거주 국가를 떠나 다시 러시아나 우크라이나 등지로 역이주

하기도 한다.CIS 고려인 작가는 이와 같은 고려인 사회의 이주ㆍ정착 과정과 질곡을 각양의 시각으로 작품에 형상화하는데, 이들 고려인 작가는 크게 세 부류로 나눠 살필 수 있다.사할린이나 연해주 출신 작가, 중앙아시아 지역이나 러시아에서 태어나 자란 작가,탈북 고려인 작가 등이 그것이다. 이들은 출신 지역에 따라 고려인 사회를 바라보는시각이 다르다. 사할린/연해주 출신 작가들은 고려인 사회 나아가 소련 사회를 타자화하여 보다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려는 경향이 있는 반면, 중앙아시아/러시아에서 태어나 자란 작가들은 대부분 현지 고려인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들 대부분은 개혁개방을 전후하여 창작의 자유가 확보되자 자녀교육과 이민족간의 결혼 문제, 도시화에 따른 가족 해체와 전통의 붕괴, ‘꼴호즈’를 중심으로 한 생활 등 주로 고려인의 삶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탈북 고려인 작가들은,개인의 편차는 있지만, 고려인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에만 집중하지 않고 그것을 소련

과 남북한 사회체제와 연결하여 통합적으로 사고하고자 한다.이런 점에서 박 미하일 의 작품 세계는 독특하다. 박 미하일은 사할린/연해주 출신) 현재 CIS 고려인은 50여만 명으로, 22만 명이 러시아에 거주하고 있다. 러시아 극동지역 연해주에 거주하고 있는 고려인은 우즈베키스탄과 타지키스탄 등에서 역이주한 1만 명과 사할린에 있는 4만3천 명을 포함하여 약 8만 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재외동포재단, <재외동포

현황> 참조). 김 게르만, 나는 고려사람이다, 국학자료원, 2013/임형모(외), 고려인문학: 중앙아시아편,청동거울, 2013 참조. 고려인 5세 작가. 1949년 타시겐트 출생. 1961년 부친과 함께 타지키스탄 두샨베로 이사, 1970년 타지키스탄 미술대학 졸업. 1976년 문단에 데뷔한 그는 1980년대부터 카자흐스탄 알마티박 미하일 소설 연구 35 고려인 작가나 탈북 고려인 작가와는 달리, 또한 그 자신처럼 중앙아시아/러시아에서태어나 자란 여타 작가들과도 달리, 고려인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소련 체제의모순과 연결하여 통합적으로 사고하는 경향을 내보인다. 1990년대 이후 발표된 그의소설 천사들의 기슭(1991) 밤, 그 또 다른 태양(1996, 사과가 있는 풍경(2000), 개

미도시 흰 닭의 춤? (2002) 등을 보면, 고려인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와 함께 소련의개혁개방 이후 불안한 시대를 살아가는 러시아 사회의 명암이 짙게 드러나 있다.5) 이는탈북 고려인 작가들이 고려인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소련과 남북한 사회 체제와 연결하여 통합적으로 사고하는 것과도 다르다. 작품집 해바라기 꽃잎 바람에 날리다6)는 특히 그러하다. 여기서 작가는 고도의 예술적인 성취를 향해 몸부림치는 화자들을통해 시대의 모순을 극복할 전망을 모색해 보이는데, 그 과정에서 협애(狹隘)한 민족성을 내세우지 않는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 세계의 근저에는 이주고려인의 상흔(傷痕)이 자리를 잡고 있다.7) 아나톨리 김이 ‘민족적인’ 것을 거세하고

에서 본격적으로 창작활동을 함. 1997년 러시아 모스크바로 이주, 그의 고조부가 가족과 함께월경(1863년)하여 연해주에 정착한 이야기를 담아낸 해바라기 꽃잎 바람에 날리다를 비롯, 벌거벗은 사진작가등 20여 편의 장ᆞ단편소설을 발표함. 단편 「기다림」으로 1999년 미국LA에서 해외동포문학상을 수상했고, 2001년 재외동포재단 및 펜클럽문학상 (단편 「해바라기」). 2001년 러시아 까따예프 문학상(중편 사과가 있는 풍경), 2007년 러시아 까따예프 문학상(장편 애올리), 2010년 러시아 쿠프린 문학상(단편집 남쪽에서의 구름) 등을 수상했다. 화가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그는, 모스크바(1998, 1999, 2001), 파리(1995, 2006), 알마티(1997, 2005), 서울(1993, 1995, 2000, 2004)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한국에서 번역 출판된 작품집으로는 해바라기 꽃잎 바람에 날리다 (새터, 1995), 장편 벌거벗은 사진작가 (수산,2007), 밤, 그 또다른 태양 (북치는마을, 2012), 개미도시 (2015, 맵씨터) 등이 있다.이에 대해서는 이상갑ᆞ정덕준, 「1990년대 이후 CIS지역 고려인 문학 연구박미하일의소설을 중심으로」, 한국문학이론과 비평제59집, 2013. 3 참고. 두 편의 장편 해바라기 꽃잎 바람에 날리다 천사들의 기슭 이 수록되어 있다. 전자는작가가 고려인 이주사와 관련하여 고려인으로서 자기정체성을 탐색하는 과정을 보여주고있고, 후자는 작가 스스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한다고 밝힐 정도로 많은 애착을 가지고 있는

작품으로,  해바라기 꽃잎 바람에 날리다 의 속편의 성격을 띠고 있다.(박 미하일, 「작가의말」, 해바라기 꽃잎 바람에 날리다 , 새터, 1995, 참조).장마야, 「박 미하일 소설에 나타난 '고려인예술가'로서의 정체성에 관한 연구」, 한국외대국제지역대학원 석사, 2014. 2.세계 보편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과는 달리,8) 박 미하일은 고려인 사회가 안고 있는문제를 소련 체제의 모순과 연결하여 통합적으로 사고하면서 동시에 그러한 시대의모순을 극복할 전망을 모색해 보이는데, 그 과정에서 이주 고려인이라는 자기정체성을 결코 소홀히 하지 않는다.알려진 대로, 박 미하일 소설에는 ‘떠남’의 모티브가 자주 등장한다. 사과가 있는풍경의 에밀리야는 ‘자유의 나라 미국’으로 떠나려고 하고, 해바라기 꽃잎 바람에날리다의 고려인 세베리나는 사업차 연해주에 온 미국인 시몬스와 함께 샌프란시스코로 떠난다. 그리고 천사들의 기슭의 게르따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암만으로 떠나와 독일 남자와 가정을 꾸리고 있고, 고려인 선국철은 가족과 함께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떠나가 사업하고 있다. 박 미하일 소설의 이러한 ‘떠남’ 모티브는 작가의 자기정체성탐색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박 미하일은 중학교를 마치고 상급 미술학교에 입학한후 십여 년 동안 “소련 각지를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세상을 무척 많이 편력”하는데,훗날 젊은 시절 방랑의 까닭을 “어떤 푸른 나라” “꿈과 환상을 찾고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피력한다. 그는 장년이 된 “지금도 바다에 떠 있는 선박이나 혹은 저 먼 곳으로달려가고 있는 기차를 보면” “가슴이 미어지는 듯한 기분이 들고”하는데, 그 기저에는 그의 고조부와 증조부, 조부 모두 어부였다는 것, 그래서 항상 ‘떠남’에 익숙해 있었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러시아 국적의 러시아인이면서도 여전히 ‘고려인’일 뿐

결코 ‘러시아인’이 될 수 없는 경계인으로서의 일상이 깔려 있다고 할 수 있다. 바꿔말하여, 이들 소설의 ‘떠남’ 모티브 또는 ‘떠남’ 의식은 시대의 모순을 극복하고자 하는하나의 방안에 다름 아니며, 박 미하일 소설의 근저에는 이주 고려인의 상흔(傷痕)이자리 잡고 있다고 하겠다.따라서 이 글에서는 박 미하일의 장편 해바라기 꽃잎 바람에 날리다, 천사들의기슭를 중심으로 박 미하일 소설이 추구하는 세계, CIS 고려인으로서의 작가의 자기정체성 문제와 함께 ‘민족’과 ‘탈(脫)민족’의 경계를 뛰어넘는 지점과 함께 박 미하일소설의 성격을 살펴보고자 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