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월 19일 박사과정 논문 주제인 고려인 화가를 만나기 위하여 난생 처음 중앙아시아란 낯선 땅에 발을 밟게 되었다. 고려인 화가를 만난다는 설렘과 러시아어에 대한 걱정을 안고 도착한 카자흐스탄의 알마티는 뿌연 스모그로 가득 차 있었다. 무엇보다 소기의 목적이었던 고려인 화가를 만나 인터뷰를 잘할 수 있을지에 대한 나의 근심을 드러내듯, 내게는 스모그가 더욱 뿌옇게 만 느껴졌다. 첫날부터 게르만 김 교수님께서 소개해준 누를란 이란 학생과 함께, 카자흐스탄 국립 미술관인 카스티브로 향하였다. 고려인 화가를 만나기 전, 카자흐스탄의 전반적인 미술을 둘러보아야 할 것 같았다. 페레스트로이카 이전까지는 여전히 소비에트 연방 정부의 영향력 하에 있었던 카자흐스탄의 미술은 대체적으로 영웅화된 그림도 많았지만, 개중에는 카자흐스탄의 독자적인 문화를 드러내는 그림(전통의상을 입고 춤을 추는 여인, 초원을 달리며 하는 사냥 등등)을 발전시키고자한 모습이 역력하였다.

이튿날 카자흐스탄에서 고려인화가 큐레이터로 활동 중인 김 엘리자베타 김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고려인 화가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고려인 3-4세대에 속하는 인물들로 한국과 관련된 풍습인 추석과 설날을 이어오고는 있지만, 한국에서의 문화풍습과는 매우 동 떨어진 형태의 것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들은 스스로를 고려 사람이라 일컬으며 이야기를 하였으나, 매우 안정적으로 카자흐스탄 사회 내에 진입하였기에 그들의 그림 안에서 한국적인 요소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모국에서의 전시를 갈망하며, 당신들의 작품에 대해 친절히 설명해주기도 하였다. 카자흐스탄에서의 짧은 일정을 뒤로 한 채, 우즈베키스탄으로 향하였다. 우즈베키스탄에는 고려인 화가가 많다고 익히 들어왔다. 1월 22일 오후 2시쯤 도착한 우즈베키스탄의 타쉬켄트는 카자흐스탄의 남쪽에 위치하여 카자흐스탄보다 날씨가 상대적으로 따뜻하며 조용한 도시 같았다. 우즈베키스탄에서는 김 아나톨리 관장님이 운영하시는 (누런)갤러리의 도움을 받아, 카자흐스탄에서 보다 수월하게 고려인 화가들을 만날 수 있었다. 김 아나톨리 관장님은 아르제바이잔 과의 인연을 계기로 고려인의 그림을 수집하게 되었는데, 누런 갤러리는 오늘날 전 세계에서 유일한 고려인 미술관이다. 작년에 누런 갤러리에서는 고려인 강제이주 80주년을 맞이하여, «Память(기억). 1937-2017» 전시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그의 딸인 김 아나스타시아 와 함께 화가들의 아틀리에를 방문하여 화가 혹은 화가의 가족과 인터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카자흐스탄의 고려인 화가와 비교하여, 다양한 세대의 고려인 화가를 만날 수 있었고 화가들의 네트워크가 잘 구축되어 있는 느낌을 받았다. 강제이주 초기에 우즈베키스탄에 정착한 화가를 제외하고서, 이에 대한 기억은 화가들에게희미했으며 우즈베키스탄 사회에 매우 잘 적응한 모습이었다. 인터뷰를 할 때마다 만나는 고려인 화가의 외양에서 동족이라는 친밀감이 느껴졌으며, 그들의 우즈베키스탄 사회의 일원으로서의 성공적인 적응은 안도감으로 다가왔다. 이번 중앙아시아의 현장학습으로 그동안 잘 알지 못하였던 고려인 화가를 직접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한국에서 생각하는 고려인의 존재는 강제이주에 대한 비극의 역사가 너무도 크게 차지하고 있어 후 세대들이 얼마나 그 사회에 잘 적응하여 살고 있는지는 잘 알지 못하였다. 더욱이 1986년 소련의 고르바초프 정권이 페레스트로이카를 실행하기 이전까지 한국은 그들의 존재를 신경 쓰지 못했기 때문이다. 박사과정 논문을 위하여 앞으로 몇 차례 중앙아시아를 방문할 예정이지만, 이번 논문을 계기로 우리 역사의 한 조각인 고려인 화가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활발히 되어 지길 바란다.

 

 전선 –홍익대 미술학과 예술학전공 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