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스탄고려인협회와 카자흐스탄 청년운동은 민족통일과 소수민족 단합을 공고화하기 위한 사업을 상시적으로 진행해야 할 필요성을 인식하고 젊은이들의 국어소유와 실천적 사업 프로젝트 실천에 착수했다. 카자흐스탄고려인협회는 국어를 소유하는 방도로 <카자흐스탄의 사회정치 및 사회문화 생활에의 고려인 젊은 세대의 통합> 프로그램 발기자로 나섰는데 이것은 2010년 7월 9-15일에 알마티에서 언어연구에 관한 첫 국제 카자흐스탄-한국 청년포럼으로 시작되었다. 포럼은 카자흐스탄민족회의, 카자흐스탄공화국 교육및과학청 청년문제 위원회, 카자흐스탄공화국주 한국대사관, 재외동포재단의 지원하에 진행되었다.

포럼에는 알마티 시청, 카자흐스탄공화국 문화성, 카자흐스탄공화국 국회 상원 및 하원 의원들, 카자흐스탄민족회의, 카자흐스탄민족회의 재단, 카자흐스탄주 한국대사관 대표들, 카자흐스탄, 한국, 러시아, 미국 학자들과 교수들이 참가하였다.

한국 외국어대학 (서울) 학생들과 카자흐스탄고려인 청년운동 열성자들이 포럼의 기본 참가자들이였는데 그들은 일주일동안 하기켐프에서 국어에 대한 강의와 담화에 참가하였고 카자흐인들의 전통적 문화를 알아보았고 국어연구 경험을 나누었으며 5일간 교육프로그램을 소화하였다. 포럼의 마지막 날에 컨퍼렌서가 있었는데 거기에서 국어를 소유할 필요성을 자각하며 카자흐어, 카자흐스탄의 역사와 문화 연구에 대한 동기와 관심, 카자흐어 연구의 혁신적 방법론의 <실천적 모델> 언어의 실천적 연구 (카자흐스탄고려인협회의 실례에서)에 관한 소수민족문화연합의 창발적 프로젝트 분석 등 문제들을 심의하였다.

카자흐어 연구 카자흐스탄-한국 포럼 참가자들에게 보내는 카자흐스탄청년운동의 호소문이 채택되었는데 거기에는 다음과 같이 언급되었다: <자국의 애국자들인 우리는 카자흐스탄인민의 통일공고화를 위해 진출하면서 소수민족들간 상호이해와 상호존대의 토대우에서 단결된 하나의 사회형성에 적극적으로 참가할 것을 모든 카자흐스탄인들에게 호소합니다. 언어의 소유는 우리가 새로운 카자흐스탄식 자체의식 형성에 이용할 막대한 잠재력입니다. 우리는 청년연합, 기타 비정부 단체, 과학 및 창작 인테리들에 국가 수뇌자가 카자흐스탄민족회의 제 15차 회의에서 내 세운 과업실천에 적극적으로 참가하라고 호소하는 바입니다.

우리는 우리 청년들의 정신적 및 도덕적 성장, 국어발전과 카자흐스탄민족의 공고화에 무관심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을 다 호소합니다. 우리의 모국이 한국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카자흐스탄과 자기의 운명을 맺으며 임의의 카자흐스탄인에 대해 그랬듯이 카자흐어 소유가 카자흐스탄애국주의의 불가분한 부분으로 됩니다.>

2010년 10월 16-17일에 진행된 카자흐스탄고려인협회 제 11차 대회는 카자흐스탄공화국 독립 20주년 준비의 기치하에 진행되었다. 국가수뇌자 엔.아.나사르바예브는 국민들에게 <카자흐스탄의 새로운 10년간, 새로운 가능성>이라는 년두교서를 보냈다. 그 교서에 2020년도까지의 나라 발전 강령이 주어졌다. 카자흐스탄의 민족적 통일에 대한 리론이 그의 사상적 정강으로 되었는데 카자흐스탄고려인협회가 그 정강 준비 및 채택에 적극적으로 참가하였다.이와 같이 민족간, 종교간, 언어간 관계의 카자흐스탄 모델과 실시되는 국가정책이 카자흐스탄인민의 불가분한 부분으로서 고려인들이 나라의 사회정치 및 사회문화 생활에 광범위로 통합함에 필요한 모든 조건을 조성하여 준다는 결론을 지어야 할 것이다.

소수민족 망

카자흐스탄의 독립년간에 공화국에는 고려인협회, 연합, 중앙 등 소수민족 망이 많이 조성되었다. 그중 일부는 종이장에만 기록되었고 다른 일부는 제기한 과업에 따라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보통 같은 사고방식을 가진 협소한 층을 연합하는 비형식 그루빠들도 나타났다. 그런그루빠는 공식적으로 등록할 필요가 없었다. 고려인 사회단체의 일부는 재등록을 하지 못하고 자기의 활동을 중지하였거나 비합법적 처지에 있었다. 

알마티고려민족중앙

알마티고려민족중앙은 어려운 시기에 형성되었다: 그 어느 한 때 위력했던 소련이 붕괴되고 카자흐스탄은 독립의 길로 첫 걸음을 내 디디고 있었다. 바로 그 시기에 고려인들에게는 자기의 사회연합을 조성하려는 오랜 꿈을 실현할 가능성이 나타났다. 1989년 6월 21일 그 당시 알마아타 시인민대의원 소베트가 알마아타시 고려문화중앙을 등록했다. 후에 고려민족중앙으로 개칭되었다.이에 일년을 앞서 허 알렉쎄이 유리예위츠가 지도하는 주창자 그루빠가 지금까지 볼 수 없던 사회단체의 기본 목적과 과업을 강구하였다. 고려운동의 열성자들인 박일, 천 왈렌찐, 최 야꼬브, 김 아파나씨, 한 인노껜찌, 황 마이, 김 프리드리흐, 김 유리, 한 구리, 김옥려, 최영근, 김 블라지슬라브, 오 웨엘, 조영환, 양원식이 주창자 그루빠에 들어갔다.채택한 정관에 따라 알마아타고려민족중앙은 자원적 원칙과 자치제, 인민들의 친선과 합의 공고화의 원칙하에서 카자흐스탄공화국의 법을 준수하면서 활동하는 사회단체로 된다.

열성자들을 될 수 있는대로 더 많이 이끌어 들이며 단체를 부단히 새로운 단계에 올려 세우면서 사업을 추진시키는 분들이 각이한 시기에 알마아타시고려민족중앙을 지도하였다: 김 아파나씨, 천 왈렌찐, 황 미하일, 박 웨예, 리 이뻬, 신 브로니슬라브를 지적할 수 있는데 이 지도자들 각자가 민족중앙의 활동에 자기의 기여를 하였다. 민족간 및 종교간 합의, 카자흐스탄사회에서의 타협성 보장 문제에서 문화중앙의 역할이 그의 실천적 활동과 책임성에 반영된다. 알마티시 고려민족중앙은 20여년을 내려오면서 우리 나라에서 친선을 공고화하며 안정성을 보존하는 과정에 자기의 기여를 하고 있다.

알마티고려민족중앙은 카자흐스탄민족회의의 모든 행사와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참가하고 있다.남부수도의 고려민족중앙은 공화국 고려인운동의 적극적 참가자들중 하나이다. 카자흐스탄고려인협회와 함께 행사를 진행하는 것은 우리 나라의 방방곡곡에 사는 고려인 사회운동 열성자들과 가까워지는데 협조하고 있다. 카자흐스탄에서 고려인정주 70주년 기념의 범위내에서 진행된 프로젝트 <디아스포라가 걸어 온 길>, <지역의 해>에 관한 행사준비를 실례로 들 수 있다. 알미티시의 고려인 디아스포라는 <고려일보>의 기본 구독자들이다. 알마티고려민족중앙의 생활의 모든 사건들이 신문, 고려말 라디오, <카자흐스탄> 공화국텔레방송에 반영된다. 알마티고려민족중앙 열성자들이 국립공화국 아카데미고려극장 집단이 무대에 올리는 연극 관람자이고 비평가들이기도 하다. 고려극장은 알마티고려민족중앙이 진행하는 모든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가한다. 모국어를 보존하고 소유하는 것이  형성된 첫 시기부터 세운 기본과업들중 하나이다.민족중앙의 집단에 한해서 함께 사업하며 휴식하는 것도 중요하다. <고향>인민합창단과 <비단길>합창단, <고려노인>, <노인단>, <친선>클럽 기타 단체는 이상 세대들을 자기 단체의 행사에 이끌어들이며 시민족중앙의 활동에도 참가시킨다.알마티시 고려민족중앙에서는 각자가 자기의 취미에 따라 교제할 수 있다. 여기에는 여성클럽 <진달레>, 장기클럽, <한국요리 애호가> 클럽, 장교클럽이 있다.

알마티중앙은 청년들과의 사업에 각별한 주목을 돌리고 있다. 현재 중앙에서는 정열적이고 목적지향성 있는 젊은 세대가 사업하고 있다. <인삼>, <남성> 무용단들이 젊은이들의 창작적 구상을 구현하고 있다.1990년도부터 시작하여 음력 설맞이와 한국문화의 날 진행이 좋은 전통으로 되었다. 카자흐스탄공화국 인민배우 김 림마 이와노브나가 지도하는 <비둘기>무용단이 민족문화의 적극적 보급자로 되여 있다.

알마티고려민족중앙은 자기 활동의 첫날부터 한반도와의 연계를 발전하고 있다. 현재 중앙은 주카자흐스탄 한국대사관, 알마티주 한국 영사관,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 알마티 한국교육원, 한인회와 연계를 발전시키고 있다.

알마티고려민족중앙은 한국국제협력단 (KOICA)의 도움으로 아주 드문 민족악기 전시회를 조직하였다. 역시 KOICA가 보낸 봉사단원들이 가야금을 타며 피리를 부는 것을 배워주었고 전통적 민족무용도 배워주었다. 알마티고려민족중앙은 자립적인 다방면적 단체로 성장하였으며 자기의 사업에서 <사람들을 위해 유익한 사업을 더 많이 하자!>라는 구호를 내 세우고 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