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신문에서 ‘투르크 경제권’ 이 우리한테 새로운 전략시장으로 대두되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봤다.  아시아와 유럽의 관문인 터키와 풍부한 자원을 보유한 중앙아를 묶은 ‘투르크 경제권’을 잘 공략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이는 또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제창한 ‘일대일로’를 우리 기업들이 활용하기 위해서도 긴요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투르크 경제권’이라고 하면, ‘돌궐’, ‘고구려’, ‘실크로드’라는 이미지가 연상되고 결국 ‘징기스칸’과 연결짓게 되는데, 우리는 중앙유라시아에 사는 투르크계 민족들의 문화적 특징과 그들의 역사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국내에서는 중앙유라시아 초원의 유목민, 실크로드 그리고 징기스칸의 몽골제국에 대한 관심이 연구자와 일반인 가릴 것 없이 증폭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방송이나 신문들도 특집 방송을 제작하거나 연재 기사를 쏟아내고 있는데, 반가우면서도 우려되는 면도 없지 않다. 일반인이나 연구자 할 것 없이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징기스칸의 업적을 칭송하고 기마유목민의 유산에 대해서 말을 하지만 그 후 그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현재 어려움의 근본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무지함은 물론 알려고도 하지도 않는다. 또한 이들의 역사를 우리의 상고사와 함께 서술하면서 지나치게 포장하거나 유목민과 농경민을 구분할려는 경향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유목민과 농경민은 인류의 역사를 움직여 온 두 개의 수레바퀴였고, 그 어느 하나를 빼놓고는 중앙유라시아사에 대한, 더 나아가 세계사에 대한 총체적이고 균형 있는 이해는 불가능하다. 특히 역사상 처음으로 유라시아 대륙의 거의 대부분을 통합한 몽골제국은 중앙유라시아사와 세계사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이다.

유럽인들의 중앙유라시아 연구의 목적? 

유럽인들의 중앙유라시아 연구의 목적은 뭘까?  그들은 지적 호기심 못지 않게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출발했고, 이러한 현상은 현대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확인된다. 예술사 분야에서 서양문화의 흔적을 찾으려 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고 몽골제국에 대한 관심도 따지고 보면 근대 자본주의 형성 및 그 원인 규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몽골제국과 계승 국가들이 멸망한 15~16세기를 기점으로 서양의 해상진출에 이어 근대 자본주의가 싹트기 시작하고 몽골제국의 세계 통합이 세계적 통상 네트워크를 형성했으며 몽골이 지배를 하지 않은 서구에서 근대 자본주의가 발생, 발전했다는 사실은 서구 학자들로 하여금 몽골제국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한 현실적이 원인이 되었다.  최근 일부 미국학자들에 의하여 이루어지고 있는 칭기스칸의 정복활동과 세계 지배와 그 원리에 대해 과도한 가치 부여 역시 이른바 보편적 가치를 내세워 세계 지배를 정당화하는 미국의 국가 정책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과거 소련 사람들이 죽인 징기스칸을 미국사람들이 살려내는 것도 그냥 일어난 일이 아니다. 

현재 한국의 중앙유라시아사 인식과 연구 경향은 크게 보아 서구 학자들의 길을 따라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국내에서 유라시아사 연구를 선도해온 김호동 교수는 “진정한 의미의 ‘세계사’, 즉 유라시아 각 지역이 그 이전의 상대적인 고립성을 극복하고 유기적으로 통합된 하나의 ‘세계’로 나아가는 결정적인 계기가 몽골제국의 시대에 이루어졌다”고 말하고 있다. 필자도 중앙유라시아에 살면서 여러 민족들을 만났고 또 그들의 역사를 들으면서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행운이라면 근세기 들어 중앙유라시아를 통치했던 러시아나 중국측의 자료가 아닌 수천년 동안 주로 유목생활을 해오던 바로 그들의 역사를 직접 들을 기회를 가졌다는 것.  

이런 상념들을 가지고 오늘은 ‘카자흐스탄에서 보는 유라시아 역사’ – 3 편을 쓰고 있다.  그러나 긴장감을 유지해야 하는 것은 바로 과거의 역사를 얘기한다고 해서 자칫 현재와는 상관없는 먼 옛날 이야기속에서만 파묻히는 것을 경계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이 시기가 중앙유라시아 거주민들이 역사의 수레바퀴를 힘차게 돌린, 따라서 세계사에 굵고 긴 흔적을 남긴 때라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필자는 초등학교가 아닌 국민학교를 다니면서 ‘국민교육헌장’을 외우면서 다닌 세대로서 영웅들의 이야기와 강한 민족의 역사에 매료됨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그런 시각으로 보고 싶은 역사만 보면 올바른 중앙유라시아의 보는데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끊임없이 현실과 연관시켜서 오늘의 문제와 미래 설계를 위한 객관적 세계관의 확립이라는 큰 목적을 늘 잊지 않고자 한다. 

강함과 중심에 대한 쏠림은 필연적으로 약함과 주변에 대한 경시로 나타나기 마련이고 이는 궁극적으로 강자와 약자, 중심부와 주변부가 공존할 수 밖에 없는 우리 사회자체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가로막을 뿐 아니라 강자(중심부)만이 존재 가치가 있다는 철학적 파탄을 불러올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김상욱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