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인 사회운동에서의 변동은 고려인협회 지도부의 갱신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런데 그저 새로운 인물에 대한 이야기만이 아니다. 다른 세대 그리고 전혀 다른 분야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지도부에 왔다. 바로 비즈니스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1995년 12월에 쏘련복싱 공훈 트레이너, 비즈니스맨 채 유리 안드레예위츠가 카자흐스탄고려인협회 회장으로 되었다. 교수들을 비즈니스맨들로 교체하는 것은 합법적인 현상이었다. 이것은 일련의 원인으로 초래된 것이다. 우선 교수들로 이루어진 지도부의 년령이 협회의 활동결과에 영향을 주었다. 둘째로 실천적 경험과 비즈니스-프로젝트가 없는 것은 고려문화 센터들의 물질기술 토대의 상태에 비참한 영향을 주었다. 셋째로 이전 지도부는 직업적 및 년령적 보수주의로 하여 이미 습관된 사고방식과 사업의 스타일을 바꾸지 못했다.

새 지도부가 사업에 착수하자 고려인협회의 중요한 목표가 점차적으로 바뀌기 시작하여 단합에로의 방침이 그의 기본 방향으로 되었다. 카자흐스탄고려인협회가 고려인 디아스포라의 운명에 한해서 이 중요한 과정의 앞장에 나섰다. 카자흐스탄 디아스포라의 인원수와 고려인 문화와 고려인 운동 전반의 발전에서 그의 역할로 보아 카자흐스탄에서 집합적 과정이 고려인 운동에 한해서 특히 중요하였다. 1996년 6월에 있은 카자흐스탄고려인협회 전원회의에서 <사회연합에 대한> 카자흐스탄공화국의 새 법이 토의되었다. 이 법에 따르면 공화국 협회로 간주되려면 협회가 적어도 공화국의 절반의 주들에 분회를 두어야 하였다. 그후 고려인 지역센터들을 단합하기 위한 큰 사업이 전개되었다. 결과 오늘 협회는 공화국의 모든 지역에 분회를 두고 있다. 나머지 단체는 센터들과는 파트너 관계의 원칙하에 사업하였다. 그런데 그중 일부가 분회로 재등록하기로 결정하였다.                          19세기말과 20세기초에 카자흐스탄고려인 사회계가 자지방에서 그리고 지도부는 중앙에서 크고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였다. 공화국에서 고려인 정주 60주년에 즈음한 행사들이 대대적으로 진행되었다. 1998년 10월에 협회의 제 5차 비정기 대회 그리고 <나사르바예브는 우리 대통령이다!>라는 문화정치 행사도 진행되었다. 이룩한 성과들 중에서 김 로만 우헤노위츠가 까라딸 구역 구청장으로 임명되었으며 농업비즈니스-프로젝트 실천이 시작된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카자흐스탄고려인협회 제 3차 대회가 제기한 기본 과업 실천에서 현저한 결과를 달성하였다. 첫째는 민족간 합의 공고화의 범위에서 고려인 디아스포라의 모든 각이한 역량의 단합과 통일이 이룩되었으며; 중앙과 지역들과의 연계가 가까워지고 공고화되었고 비즈니스맨들, 과학 및 문화 인테리들과의 동맹이 정리되었다. 둘째로, 자지방과 중심에서는 민족문화와 언어 재생이 가장 우선적인 과업으로 되었었다. 셋째로 지난 4년간에 구역, 시, 주 중심들과 분회에서는 민족운동 발전과 민족자체의식 각성에 돌려진 사업이 가일층 완성되었다. 넷째로, 카자흐스탄고려인협회는 고려인 디아스포라의 로력적 및 정치적 적극성을 제고하는데 협조하였다. 카자흐스탄의 고려인들은 과도기의 모든 난관과 경제적 위기의 악화에도 불구하고 진격하는 시장경리와 그와 관련하여 정치, 경제, 문화 생활에서 발생한 변동에도 불구하고 그 환경속에서 잃어지지 않았다.

고려인협회는 카자흐스탄민족회의의 구성부분

2001년 10월 16일에 카자흐스탄고려인협회 제 8차 대회가 진행되었다. 카자흐스탄의 전역에서 온 대표 102명이 상기 대회에 참가하였다. 알마티 (19명)시, 알마티주 소재지 (16명), 따라스분회 (7명), 까라간다 분회 (12명), 남부카사흐스탄주 분회 (8명)를 대표하는 대표단들이 가장 컸다. 공민의 공통성을 토대로 한 유일한 카자흐스탄인민의 유기적 부분으로서의 카자흐스탄 고려인들의 다방면적 통합에 돌려진 카자흐스탄고려인협회의 활동의 전략적 방향을 바꾸는 것은 단체의 지도자 교체와 때를 같이 하였다. 공화국 국회 상원의원으로 된 채 유리 안드레예위츠를 여러해 동안 부회장으로 있으면서 단체의 일상적인 다방면적  사업을 직접 지도하는 김 로만 우헤노위츠가 교체하였다. 

카자흐스탄민족회의와 같은 중요한 사회제도의 가능성을 효과적으로 이용하는데서 협회의 전략적 방향실천의 기구를 보고 있었다. 오늘 카자흐스탄고려인협회를 카자흐스탄민족회의의 가장 적극적인 구조적 세부로 당당히 간주하고 있다. 2009년 말에 아스타나에 카자흐스탄고려인협회를 대표하는 사무실이 열렸는데 이 사무실은 공화국의 기타 민족-문화 중앙들이 평화외 합의의 궁전으로 자리를 옮기도록 적극적으로 협조하였다. 그렇게 함으로서 국가수뇌자의 위임을 수행한 것이다.

카자흐스탄고려인협회는 카자흐스탄민족회의의 폰두조성 시초에 서 있었으며 그의 첫 설립자로 되었다. 동시에 폰드는 카자흐스탄민족회의의 새 잡지 <메닌 옐림> 설립자로 되었는데 잡지의 첫 호가 이미 발행되었다. 2009년에 카자흐스탄고려인협회가 카자흐스탄민족회의 사무국의 협력하에 큰 사회적 의의가 있는 국가프로젝트 실천에 돌려진 큰 사업을 진행하였는데 그것을 국가프로그램이 로트체계를 걸쳐 융자한다. 카자흐스탄고려인협회 김 로만 우헤노위츠의 발기와 카자흐스탄민족회의의 지지하에 세 민족방송사를 토대로 하여 카자흐스탄민족회의의 하나의 텔레프로그램 <메닌 카자흐스탄>을 조성했다. 이 프로그램은 여러가지 테마, 깊은 내용, 관람자들의 높은 레이찡으로 특징된다. 카자흐스탄 텔레방송의 원로인 최 엘라 안드레예브나가 지도하는 이 프로그램이 민족간 합의를 테마로 한 가장 우수한 프로그램으로서 2008년에 <금년도 선택> 상금을 받았다.

최근 2년에 <고려일보>신문의 호마다가 카자흐스탄민족회의의 활동에 대한 기사로 시작된다. 신문은 협소한 소수민족 문제만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의 전 인민에게 관계되는 공동의 테마들을 취급한다. 신문지상에는 민족간 관계 분야에서 국가정책, 카자흐스탄에서 거주하는 기타 민족들에 대한 자료들이 많아졌다. 신문은 예브르아시아 메디아 포럼의 상시적 참가자이다.카자흐스탄고려인협회 20주년의 표징하에 지난 2010년도는 카자흐스탄에 한해서 아주 뜻깊은 해였다. 2010 년은 국가자주권에 대한 선언 채택, 대통령 직위 제정 20주년, 유럽안전및협조기구에서 카자흐스탄이 사회담당, 카자흐스탄헌법 15주년, 카자흐스탄민족회의 형성 15주년, 한국에서 카자흐스탄의 해이다. 이것이 모든 행사진행에 반영되는 것은 물론이다. 

카자흐스탄고려인협회는 자기 존재 이래 20년간에 자기 주위에 고려인 사회단체들을 결속시켰고 고려인 디아스포라를 단합시키고 중앙 및 지방 정권기관, 사회단체들, 카자흐스탄민족회의, 소수민족문화연합, 언론계와  긴밀한 협동동작을 수립하였다. 그리하여 고려인 디아스포라의 실례로 민족간 합의의 카자흐스탄 모델을 시기카자흐스탄민족회의가 헌법적 권한을 얻게 됨에 따라 카자흐스탄고려인협회가 사회정치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가하기 시작했다. 카자흐스탄공화국 국회와 모든 수준의 자치회에 디아스포라를 대표고로 내 세우는 것이 협회의 사업의 결과로 되었다.

2010년에 카자흐스탄민족회의의 협력과 문화부의 지지하에 사회적 의의가 있는 프로젝트 실천 (국가입찰에 참가하는 방도로)에 돌려진 사업이 진행되었는데 협회가 입찰에 직접 참가하여 12,3밀리온 뎅게의 세 로트를 땄다. 그런데 카자흐스탄고려인협회의 모든 분회들이 입찰에 참가하는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일부 분회들은 아직 프로젝트 실천에 참가하기에 준비되지 못하였다. 빠블로다르, 딸듸꼬르간, 따라스 분회들이 상기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참가하고 있다. 그들은 주의 수준에서 로트를 땄다.

카자흐스탄고려인협회는 <통합과 언어정책 연구 경험 (사회연합 <카자흐스탄고려인협회>사업경험을 토대로)이란 테마로 원탁모임 조직 및 준비 사업을 진행하였다. 상기 행사는 2010년 7월 14일에 카자흐스탄공화국 대통령 직속 카자흐스탄전략연구소 회의실에서 진행되었다. 원탁모임은 카자흐스탄공화국 문화부의 <카자흐스탄민족회의 활동에 대한 과학-감정 원조> 로트실천의 범위내에서 카자흐스탄민족회의 감정위원회의 지지하에 진행되었다. 두 세션으로 이루어진 원탁모임에서 5개국 (카자흐스탄, 한국, 러시아, 우스베키스탄, 영국)에서 온 30명의 학자들이 발언했다. 그리고 공화국 소수민족연합 지도자 15명, 카자흐스탄민족회의 과학감정위원회 위원 9명, 역사, 어문학, 정치학, 사회학, 교육학, 철학 즉 6개의 과학분야 학자들이 참가하였다. 원탁모임의 사업 범위에서 큰 전시회가 열렸는데 거기에는 카자흐어와 한국어 연구에 필요한 학습자료, 방법론, 사전, 전자수단과 프로그램이 전시되었다. 토론과 발언 과정에 중요한 문제들이 심의되었으며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 강구되었다.       

 

고려인 소수민족문화연합 창설

(제 49호의 계속)

 

김 게르만 – 건국대 (서울) 역사강좌 교수,

알파라비명칭 카자흐국립대 한국학 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