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7.12.20.~ 12.26 기간 동안 서울 인사동의 갤러리 31에서 「러시아로부터 온 사랑과 함께」란 전시가 열렸다. 현재 한국에 상주하는 러시아 미술가 11명의 첫 번째 전시회였는데, 그 중에 고려인 화가인 박 미하일과 박 엘레나 남매가 포함되어 있다. ‘러시아로부터’라는 전시회의 명칭과 ‘미하일’과 ‘엘레나’라는 그들의 이름이 보여주는 것처럼, 현재 고려인은 인종적 혹은 혈통적으로는 한국인일지 몰라도 문화적 정체성은 러시아에 더 가까운 것이 사실이다.

고려인, 그들은 누구인가?

올해는 강제이주 80주년이 흐른 해로, 한국과 중앙아시아의 곳곳에서 고려인 관련 행사를 많이 진행하였으나, 정작 고려인의 화가에 대한 전시는 국내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나마 이번 러시아 미술가들의 전시에 더해져 고려인 화가의 그림 몇 점 볼 수 있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오늘날 고려인이라 불리는 한인들은 1864년을 기점으로 러시아에 이주를 시작했다. 당시 생계가 어려웠던 한인들은 연해주 두만 강가 핫산(Хасан)에서 하바로프스크(Хабаровск)의 아무르 강까지 이주를 하였다. 그들은 만주와 연해주를 무대로 항일독립운동을 펼쳤으며, 1920년 신한촌 참변과 우수리스크 참변 등 일제의 잔인한 탄압을 겪었다. 그리고 1937년 이오시프 스탈린(Iosif Stalin, 1879~1953)에 의해 러시아의 원동(遠東)지역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당한다. 스탈린 통치 시기 한인들은 거주이전의 자유는 물론 강제노역과 소수민족으로서의 수난 및 차별을 겪었다. 현재는 중앙아시아를 포함한 러시아 전역에 55만여 명의 고려인 재외동포가 거주 중에 있다. 그들의 기구하고도 서글픈 역사는 분명 나치의 유태인 탄압에 버금가는 역사적인 비극임에도 불구하고, 모국인 우리의 관심은 이들의 언저리에 머문 경우가 많았으며, 그것도 대게는 한시적이었을 뿐이다. 

화가 박미하일의 작품세계

소설가이며 화가인 박미하일은 한국에서 12번째의 개인 전시회를 가진 바 있다. (1993, 1995, 2000, 2002, 2004, 2008, 2009, 2010, 2011, 2014, 2015) 그가 한국에서 처음 전시를 열었을 때, 그의 그림에 감명을 받은 후원자 이은수의 도움으로 한국에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었다. 박미하일은 타지키스탄의 두샨베 미술대학을 졸업(1970)하여 전업 화가로 활동하였으나, 1976년 구 소련에서 문학 활동을 시작하였기에 지금은 화가 겸 작가로서 한국의 다양한 문학작품을 러시아에 소개하는 번역 일을 하며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번 전시회(「러시아로 부터 온 사랑과 함께」)에서 그가 선보인 작품은 「여름ЛЕТО」(2017), 「새ПТЙЦА」, 「파리, 몽마르뜨MouLin Rouge」(2017) 의 모두 세 작품이다. 이번 그림들은 구상을 추상화하는 뛰어난 능력의, 구체적이지만 대담한 구도로 사실적이며 몽환적인 색감을 서정적으로 구사하는, 기존 틀에서 벗어난 오히려 심상을 이미지화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1949년 우즈베키스탄에서 출생하여, 인생의 굴곡을 겪으며 평생 다양한 나라를 오갔던 그에게 있어 새로운 도시의 경험은 그만의 상상력과 다채로운 색감이 발현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그러나 그 수많은 나라 중에 한국은 그의 모국이기에 더욱 특별한 영감을 주었고, 그의 여동생인 박 엘레나 역시 현재 남해에 거주하며 그림 작업을 하고 있다. 비록 역사의 질곡의 희생양으로서 박 미하일 남매를 비롯한 모든 고려인이 모국을 떠나 중앙아시아에서 삶을 영위할 수밖에 없었던 아픔을 안고 있지만, 그는 인터뷰에서 자신이 고려인 5세임을 잊지 않았으며, 자신의 조상이 연해주에서 어부 생활을 하였던 것에 대해서도 거듭 언급하였다. 그가 배우고 썼던 말은 러시아어였고 한국에 대한 역사도 배울 기회가 없었다. 1989년 알마티의 교육센터에서 한국어를 익힌 뒤 한국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는 한국에 거주한 이후부터 부모, 가족, 조상, 한국의 계절과 풍경에 대한 사유를 그림으로 표현하였고, 그의 작업에 있어 모국성이 뚜렷이 나타나게 되는 시점이다. 여동생 박 엘레나 역시 그동안 자신이 살아왔던 중앙아시아를 떠나와 한국에 거주하며, 남해의 풍경(「남해의 가을 ОСЕНЬ В НАМХЕ」(2017))을 정감 있는 색채로 담아내고 있다. 

 

홍익대  미술학과 박사과 정생

전선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