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불락(해발 3200미터)에서 한 텡그리 봉(지질학적 높이는 6,995m이나, 봉우리의 얼음을 포함한 높이는 7,010m이다. 한텡그리 봉은 톈산 산맥에서 포베다 산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산이다. 카자흐스탄에서 가장 높은 산이며, 키르기스스탄에서는 포베다 산, 레닌 봉에 이어 세 번째 높이이다. 7000m 봉우리 중 가장 북쪽에 위치한다)쪽으로 바라본 풍경>

카자흐스탄에 살면서 한번쯤은 중앙유라시아의 역사에 대해 좀 더 깊이 알고 싶다는 지적 호기심을 가져보았을 것이다. 철을 자유자재로 다루며 최초로 초원의 제국을 건설한 스키타이 제국, 흉노제국이 우리의 역사에도 여러가지 형태로 영향을 미쳤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비단 이뿐이랴? 이후 투르크, 징기스칸의 몽골제국까지만 하더라도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더 한반도는 이 땅과 유기적인 관계를 맺어 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더더욱 중앙유라시아의 역사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는 지도 모르겠다. 

이런 호기심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카자흐스탄의 영토범위와 중앙유라시아의 개념을 따져보아야 한다. 현재 카자흐스탄 영토는 카스피해 북안부터 동쪽으로 알타이 산맥 그리고 남으로 천산산맥을 경계로 광활한 면적을 자랑한다. 중앙유라시아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도 역사적으로 유목민들이 가장 탐내던 기름진 초원지대의 대부분이 현재 카자흐스탄 땅이다.  

여기서 잠깐 중앙유라시아라는 개념을 정의하자면, 유라시아 대륙의 중앙부분 즉, 우리와 같은 우랄알타이어계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거주지를 말하는 개념이다. 동서로는 동유럽에서 동북아시아에 이르고, 남쪽으로는 북극해에서 카프카스산맥, 힌두쿠시 산맥, 파미르고원, 쿤룬산맥, 황하에 이르는 실로 광대한 지리적 공간을 가리킨다. 그러나 중앙유라시아는 지리적인 용어라기 보다는 문화적인 개념이다. 즉, 중앙유라시아는 유구한 역사과정에서 그 범위가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하면서 그 동쪽과 서쪽 그리고 남쪽 세계의 역사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중앙유라시아'라는 지역명칭은 정작 외부인이 붙여준 경우가 많다. 20세기가 될 때 까지 이땅에서 삶을 영위했던 거주민들은 이러한 광역적인 지역 명칭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투르키스탄(투르크인의 땅)이라는 유명한 지역명칭도 19세기에 들어와 영국과 러시아가 중앙아시아를 놓고 각축을 벌이는 과정(이런바 ‘그레이트 게임’)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중앙유라시아에 대한 개념은 이 정도로 하고, 자연환경을 살펴보자. 필자는 이 자연환경을 무척 중요시 여기는데, 한반도에 갇혀 살았던 우리가 극복하기 어려운 여러가지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서는 이 부분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물론, 직접 여행을 다녀온다면 더욱 이해가 빠를 것이지만…..

중앙유라시아는 한마디로 높은 산맥과 고원, 그리고 초원과 사막, 풍부한 녹지, 오아시스로 이루어져 있다. 높은 산맥과 고원의 중심지, 만년설을 머리에 이고 있는 파미르고원을 중심으로 해발 4000미터와 5000미터짜리 고봉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우리가 사는 알마티의 뒷산 침불락만 해도 4천 고봉들이 부지기 수이다. 그래서 한여름에도 빙하를 볼 수 있다. 캅차가이 호수 쪽에서 침불락을 쳐다 보면 정말 장관이다. 특히나 호수위에 떠 있는 듯한 눈덮힌 천산산맥은 시쳇말로 ‘카메라만 갖다 데면 바로 작품이 되는’ 그런 명소이다. 

더불어, 알마티 시내에서 출발하여 1시간이내에 해발 3200미터에 도달할 수 있고 또 거기서 걸어서 2시간이면 빙하의 갈라진 틈, ‘크레바스’를 체험할 수 있다. 그 뿐이랴, 골짜기 자체가 빙하위에 놓여있어서 딛고 선 땅 밑에서 빙하가 녹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이다. 이는 체험을 해 보지 않은 사람은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동서로 8000킬로미터인 중앙유라시아의 광활한 초원을 하루 200킬로미터를 달리는 말을 타고 40일 만에 주파한다는 개념을 현재 우리는 가지고 있지 못하다. 한반도에 갇혀 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천년 전 이땅에서 살았던 선조들은 실제로 8000킬로미터 거리를 우습게 횡단했다. 

나중에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흉노가 동서 흉노로 분열된 후 이들은 가볍게(사실은 생존을 위해) 초원을 가로질러 유럽을 공포의 도가니로 만들었다. 

하여튼 우리가 가지고 있는 거리개념으로는 어마어마한 거리이지만 수천년 전부터 이 땅에 살았던 유목민들은 이 거리를 오가며 삶을 이어왔고 지도자를 따라 뭉치기도 했고 분열을 거듭하면서 여러 왕조를 탄생시켰다.  

필자가 아는 현지 학자는 우리가 배운 세계사 책에 등장하는 흉노(훈), 투르크, 선비, 몽골 등도 따지고 보면 지도자의 씨족이나 부족명을 따라 불리워진 것에 불과하고 유라시아 초원에서 삶을 엮어가는 사람들은 늘 그대로 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중앙유라시아 이 땅에서 명멸해간 여러 왕조들의 역사는 곧 카자흐스탄의 역사이다고 강조했다.    

중앙유라시아의 자연 환경을 말하면서 꼭 언급해야 하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천산산맥이다.  동서로 2500킬로, 남북으로 약 200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이 산맥은 바로 ‘실크로드의 어머니’이다. 고봉준령들이 널려 있는 이 천산산맥은 북쪽에서 내려오는 비구름을 막고 서서 비와 눈을 뿌리게 했다. 그래서 천산 북방에는 풍요로운 초원이 있는 준가르 분지, 세미레치, 그리고 그 북쪽엔 알타이 산맥이 있다. 

이뿐 아니라 이어진 파미르 고원까지 이들 고산준령은 중앙유라시아의 자연환경을 결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습기를 머금은 축축한 공기의 이동을 가로막아 이 지역을 건조하게 만드는가 하면, 때로는 구름과 눈을 불러와 초원과 분지를 푸르게 물들이는 비를 내리게 하고 만년설이 녹은 물은 강이 되어 저지대 오아시스를 기름지게 하였다. 그러므로 이런 고산준령이 없었다면 중앙유라시아의 유목민과 오아시스 정주민의 생존 자체가 불가능했다. 

다음으로 강 유역에 풍요로운 삼림과 비옥한 땅을 형성하면서 카스피해로 흘러가는 볼가 강, 동서쪽에는 광대한 킵차크 초원(남러시아 초원과 카자흐 초원)이 펼쳐져 있다 이곳에 서 준가르 분지를 지나 몽골고원에 이르는 지역은 이른바 유목민의 세계인 초원 지대이다. 유라시아 역사를 통해 다양한 유목민 집단이 동에서 서로 이동하고 투르크와 위구르를 비롯한 많은 유목민들이  국가를 세우고 흥망을 거듭한 지역도 바로 이 초원 지대이다. 

한편 파미르 고원을 중심으로 한 고한 지대의 산록이나 그곳에서 발원하는 하천 유역에는 오아시스 형성에 적합한 조건이 갖추어져 있다. 그리하여 서투르키스탄의 아무다리아강, 시르다리아 강, 자랴프샨 강 유역에는 페르가나 계곡을 비롯하여 타쉬켄트, 사마르칸트, 부하라, 호라즘 등 대표적인 오아시스도시가 이루어져다.

중앙유라시아의 역사를 옳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현재 지도 위에 그어진 국경선을 제거하고 이러한 자연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시각으로 바라볼 때 좀 더 정확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계속)

 

김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