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스탄에 80년간 거주하는 기간에 고려인 문학가들은 모국어로 된 책을 18권밖에 발행하지 못했다. 중앙아시아의 고려인 문학계에서 최근 10년기간에 자기 작품을 한국어로 쓰는 작가들의 세대가 완전히 바뀌었다. 1992년에 박 미하일 작가는 고려인 작가들의 작품을 게재할 것을 예고하는 <쁘로스또르> (광야)잡지의 서론에 아래와 같이 지적하였다: <…한국어로 쓰는 년로한 작가들이 몇 명밖에 되지 않습니다. 나머지는 러시아어로 창작하는 30-40대 그리고 그 다음 세대입니다…그런데 작가가 그 어떤 언어로 쓰는가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만일 작가가 그 무엇을 표현하고 싶으면 그가 아는 언어로 쓰는 것입니다.>중앙아시아 고려인 작가들의 작품을 외국에서, 우선 모국에서 발행된 것이 시대의 새로운 사조로 되었다.

 

(제 40호의 계속)

8.3. 고려인들의 문학

이미 19세기말과 20세기 초에 서부독일, 핀랜드, 미국, 한국 연구자들이 그들이 발행하는 서적에 쏘련의 고려인 시인들의 서정시들을 넣었다. 1990년대에 서울에서 김 아나똘리, 박 미하일, 리 스따니슬라브 기타 작가들의 서적들이 한국어로 발행되었다. 문학이 과학적 면에서 객관성을 띠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족적 정체성 문제를 연구함에서 문학이 믿음직한 원천으로 될 수 있다. 왜냐 하면 그것이 예술적 확실성, 자기의 객관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객관성은 우선 임의의 문학작품이 저자들의 의식의 사업의 산물로 되는것괴 연관되었다. 많은 작가들이 정체성의 개인의 위기를 겪었으며 그것이 그들의 창작적 의식의 일부분으로 되었으며 그들이 창작한 장편소설, 단편소설, 시에 반영되었다. 둘째로 많은 작가들은 자기의 작품에 의식적으로 이 문제를 반영하며 문화간 교제의 각이한 형태를 제의하고 있다. 통례로 그런 형태의 특징은 필자가 소속되는 그 민족이나 소수민족 그루빠의 사상과 개념, 그의 철학적 혹은 세계관적 립장으로 설명된다. 

문학을 민족적 및 인종문화적 정체성 문제에 관한 정보의 믿음직한 원천으로 충분히 간주할 수 있게 하는 또 세번째 사정이 있다. 그것은 민족적 사고방식이 작가가 이용하는 문학수단의 체계를 걸쳐 표현되는 것이다. 통일성으로 심의되고 분석된 이런 체계가 현실에 대한 객관적 정보를 주는 것은 물론이다. 그런데 이런 객관성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작품에 <감추어 놓은> 문화적 코드를 연구자가 읽고 그 의미를 <풀수 있는> 문학연구학적 및 문화연구학적 현대 방법을 소유하는 것이 필요하다. 고려인들은 150여년을 모국의 경외에서 즉 처음에는 러시아 원동에서, 다음은 강제이주된 후에 그리고 결국에는 쏘련이 붕괴된 후에 거처를 잃어버린 감을 느꼈다. 그들은 자기의 집을 세번 남겨두게 되었는데 조선에, 다음은 연해주에, 쏘련의 중아시아와 카자흐스탄에 남겨두었다 게다가 마지막에는 육체적으로는 그들이 제 자리에 남았으나 쏘려이라고 하는 집은 기차가 과거로 떠나듯이 과거로 되여버리고 말았다. 때문에 대가 바뀌울 때마다 고려인들 앞에는 <우리의 집이 어딘가?, 우리가 누구인가?>하는 같은 질문이 나섰다. 카자흐스탄의 고려인들이 자기의 본부를 <한국관>이라고 칭한 것을 보고 우리가 그들이 자기 집을 찾고자하는 뚜렷한 실례를 볼 수 있다.주지히는 바와 같이 집은 사람이 안전 김을 느끼는 장소를 상징한다. 과거부터 집을 세계의 중심으로, 선조들의 영혼과의 연계, 가정, 가문과 조국의 상징으로 생각하여 왔다. 때문에 카자흐스탄 고려인-작가들의 작품은 집-조국이란 개념으로 충만되었다.

김 아나똘리의 소설 <서울에서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눈물>의 주인공은 고려인인데 자기의 문화를 보아서는 러시아인이다. 그는 먼 러시아의 눈이 쌓인 지방에 있는 어머니의 묘지를 다녀와서 <왜 어머니는 그 곳에 있고 아직도 혈기왕성한 나는  한국 땅에 있는 것일까?>하는 질문에 답을 찾지 못해 고통을 느낀다. 그런데 주인공의 형상은 자서전적이다. 모국어를 몰라 부득이 통역을 걸쳐 교제하게 되는 김 아나똘리 자신이 한국에서 자기를 외국인으로 느낀다. 그는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모국어도 모르고 조상의 땅에 온 제가 부끄럽습니다. 그런데 나는 어머님의 묘소를 찾아보듯이 이 곳에 왔습니다>. 주인공의 마음속의 독백은 슬픔과 망설임으로 가득찼다: <우리 고려인들이 이국땅 멀리에서 살다가 그 곳에서 죽는 목적이 무엇일까? 자기의 정신적 갈증을 달래지 못하고 고통을 느끼면서 우리가 어떤 숭고한 사명을 수행하는가? 어머니가 우리의 모든 마음속 곤혹과 지향을 알고 있었듯이 이 갈증과 고통을 모국도 알고 있다는 말인가?> 작가의 아동시절은 우스토베 부근에서 흘러갔다. 아동시절을 회상하는 그의 그림들은 먼지가 낀 누런 초원, 하늘의 푸른 빛, 누런 언덕, 새파란 파잎, 끝없는 초원, 산우에서 천천히 돌고 있는 매들의 떼…<어린 시절에 아이가 처음으로 본 그 나라의 지형이 사람의 마음을 형성한다. 그후에 그것이 변하지 않는다. 마음이 더 넓어질 수 있고 세계의 다른 그림으로 보충될 뿐이다. 나는 더위에 타는듯한 끝없는 초원위에 솟은 태양의 숭배자로 영원히 남을 것이다. 나의 마음속에서는 여러가지 민족의 언어가 들리는 화려한 시장이 절대 자리를 잡지 못할 것이다. 나는 복합적 사고력을 가진 사람으로 될 것이다> - 작가가 확신한다.한진의 소설 <그 곳을 어떻게 부르는가…>의 내용은 고향에 대한 사색으로 충만되었다. 늙은 고려인 할머니가 알마-아타에서 홀로 살고 있다. 딸은 남편과 함께 발찍해 연안의 작은 도시에서 살며 아들은 직업에 따라 까라간다로 파견되었다. 눈을 감기전에 어머니는 딸에게 말한다: <…사람이 태여난 곳을 고향이라고 하는데 사람이 죽는 곳은 어떻게 부르지? 그런 이름이 있을까? 그 곳에 이름이 없을 수가 없어, 꼭 있어야 해. 게다가 그 명칭도 <고향>이란 말과 같이 소중하고 정다워야 할것이다, 말만 들어도 가슴이 죄이도록 말이야…> 딸은 이 말을 들은 후에 생각에 잠겼다: <이전에는 사람들이 태여난 곳에서 살다가 늙고 사망하였다. 항상 그랬었다. 고향이란 사람이 태여난 곳만 아니라 사망한 곳도 고향이었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 (고려인들)이 일부로 다른 명칭을 생각해낼 필요가 없었는데 지금은?

1937년도 전에 원동에서 태여난 고려인들(남자나 여자) 이 한명도 자기 조국에서 사망하지 못한다>.박 미하일의 중편소설 <천사들의 부두>의 주인공 림 아르까지는 밤에 오직 한가지 생각으로 잠을 깬다: <…자기의 이름도 한글로 쓰지 못하며 한반도에서는 그 말을 하지도 않는, 아우깐 노인들에게서 어릴 때 배운 구어도 겨우 하는 고려인의 생김새를 가진 내가 도대체 누구인가? 서양인인가, 러시아인인가? 답을 찾을 수가 없다>.

알마티 작가 김 블라지미르의 장편소설 <흑룡의 비밀> 주인공들은 네명의 친구들이다. 수년이 지난후에 만난 그들은 자기의 생활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중 한 친구 위싸리온이 <내 집이 어디에 있지? 살아오면서 습관이 되었는데 결국은 남가일몽이 된 셈이라니까>. 로만이란 친구가 쓰라림이 섞인 어조로 말했다:<우리도 온 나라 아니 온 세계에 흩어졌단 말이야. 물론 각자가 자기의 나라에서 살아야 하지, 그러면 불평을 말할 데가 없거든…지금 독일인들이 독일로 가고 유태인들은 힘들게나마 이스라일로 가지. 그런데 우리는? 자본가들이 살고 있는 한국으로는 우리 자신이 가지 않겠단 말이야. 그런데 북한으로 당이 파견해서 갔는데 얼마지나지 않아 되돌려보냈지…>. 셋째 친구 정 펠릭스도 <내게 집이 있는가?>하는 질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집이 그 어디에도 없어, 집을 세우려고 했는데 기초가 튼튼치 못했어, 모래란 말이야…>.보는바와 같이 쏘련 그리고 구쏘련 고려인 작가들의 정체성을 순전히 개인적인 <내>라는 광범위의 정체성들 중에서 그들이 가지는 선택에 따라 찾아야 할 것이다. 한 편으로는 그루빠식 (민족적 또는 인종상) 정체성에 대한 정확한 감정을 상실하는 것은 그의 불완전성에 이르게 한다. 때문에 정체성에 대해 그 어떤 완성된 것에 대해 말해야 할것이 아니라 정체성을  상시적인 과정으로 보면서 동일시에 대해 말해야 한다고 주장한 영국 문화연구학자 스쮸아르트 홀이 옳게 말했다. 쏘련 고려인 작가들과 시인들은 한편으로는 자기의 작품에 자신의 개인적 시초를 강조하며 다른 편으로는 집단적인 인종상 경험을 반영하였다. 디아스포라 문학의 주인공들과 등장인물들은 그루빠식 및 개별적 의식을 연합하며 자기의 불완전하고 혼합적인 정체성의 모든 층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자서전이 디아스포라 문학의 가장 중요한 쟝르들중 하나이다. 자서전은 자주 <문학적 에세이, 평론 및 고백의 비평-문학적 혼합>을 이룬다. 이에 있어 고백의 요소가 자주 우세하는데 그것은 <marginale>의 자서전의 과업들중 하나가 자신을 소개하며 <토로하며> 자기의 정체성을 들어내려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