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10월 13일 아침 알마티시 스포츠궁전으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여기에서 카자흐스탄 인민들의 포럼이 진행될 것이었다. <인민들의 친선>이 포럼의 주제였다. 포럼의 5000명의 대표들 중에는 그당시 알마티주 빤필롭쓰끼 구역 부구청장이였던 신 보리쓰 니꼴라예위츠도 있었다. 포럼 참가자들은 주석단에 오르는 나사르바예브 대통령을 우렁찬 박수로 환영하였다.

 

몇분후에 발언을 하게 될 보리쓰 니꼴라예위츠는 아무리 애를 써도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힐 수가 없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대통령을 비롯하여 그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언을 하게 되니…보리쓰 니꼴라예위츠는 이날 발언하기로 계획되어 있는 23명의 대표들 중에서 세번째 차례로 발언할 영광을 지니게 되었다. 소개자가 그의 이름을 짚자 보리쓰 니꼴라예위츠는 <침착하자>는 다짐을 가지고 연단에 올랐다. 그는 인사말을 다섯가지 (카자흐어, 한국어, 러시아어, 독일어, 위구르어) 언어로 하고 그에게 제공된 15분은 카자흐어로 발언하였다. 발언이 끝나자 5천명의 대표들이 일제히 서서 박수로 환영하였고 나사르바예브 대통령은 그의 손을 굳게 잡고 악수했다…연단에서 내려 자기 좌석에 가는 동안 가까이 있는 대표들이 <바우릠>(형님)이라고 부르면서 그의 손을 잡았다. 이런 순간은 일생을 두고 기억에서 스쳐지지 않는다…

…보리쓰 니꼴라예위츠는 1939년에 알마아따주 까라딸구역 알가촌에서 태여났다. 그의 부모들이 강제이주된후 2년이 지나 태여났으니 고려인들이 새 곳에 적응하기 시작하던 어려운 시기였다는 것을 지적해야 할 것이다. 강제이주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듣지는 못했지만 거의 20명이 되는 두가 족이  한 카자흐인 가정에 배치시켰는데 카자흐인 가족이 ….여서 ….명이 한 집에서 살았다는 이야기를 아버지에게서 들은 적이 있었다. 그렇게 많은 식구들이 한 집에서 살려면 화목하지 않고서는 살지 못했을 것이다. 

-너그러운 심정을 가진 카사흐인들이 고려인들을 많이 도와주었다고 감사의 말을 하는 것이 진실입니다. 물론 후에 고려인들의 생활이 나아지기 시작하자 고려인들도 카자흐인들을 가능한대로 도와주었지요…보리쓰 니꼴라예위츠가 이야기 한다.

보리쓰는 알마아따주 칠리크에서 중학을 필하고 까라딸구역 <크라스늬 워스또크>칠년제 학교에서 상급삐오녜르 지도원으로 일했다. 그는 일하면서 아바이명칭 알마아따 사범대학 물리수학과를 졸업하였다. 보리쓰는 수학과 물리를 몹시 좋아했다. 때문에 이 학과에 입학한 것이다. 그는 까라딸 구역 학교들에서 수학교사로 일하면서 교무주임의 일도 겸하였다. 그의 로동활동의 둘째 단계는 빤필로브 사범전문학교에서 시작되었다. 

보리쓰 니꼴라예위츠가 사범전문학교에서 일하던 시기는 소학반에서 3년제 교육을 위한 새로운 교육계획안과 프로그램 도입과 때를 같이 하였다. 수학교수방법 상급방법론가인 그는 사범전문학교에서 일하는 기간 3년제 소학반 교사들의 사업에 새 프로그램을 도입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사범전문학교를 토대로 하여 중앙 및 주 교사자격향상소와 함께 단기 강습을 조직했으며 새 학습계획안과 프로그램 도입에 관한 세미나르도 진행했다. 그당시 초급당단체 비서였던 신 보리쓰 니꼴라예위츠는 사회사업에도 적극적으로 참가하였다. 

구역 지도부는 그의 조직자적 및 실무적 품성에 즉시 주목을 돌렸다. 구역 및 주 당 위원회의 추천에 따라 보리쓰 니꼴라예위츠는 구 쏘련의 큰 농업경리들중 하나인<시월 40주년 꼴호스> 사회문제 담당 부회장으로 파견되었다. 이 경리를 이중 사회주의 로력 영웅 니꼴라이 골로와쯔끼가 지도했다. 꼴호스원들의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 보리쓰 니꼴라예위츠는 항상 인내성, 인간애, 선의를 발휘하여 문제점을 긍정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사람들을 돕는 것이 저의 생활의 철칙입니다> - 보리쓰 니꼴라예위츠가 우리와의 담화에서 지적했다.

1992년 3월에 그는 빤필로브구역 부구청장으로 전임되어 이 직책에서 은퇴할 때까지 일하였다. 1999년 3월에 카자흐스탄의 정치적 무대에 새로운 <오딴>당이 나타났다. 그를 보리쓰 니꼴라예위츠를 경험있는 사상가로 알고 있는 구역 지도부는 <오딴>당의 주지부 제 1부회장으로 일할 것을 권했다. 그는 이 직책에서 4년을 일했다. 그의 조직자적 능력과 실무적 품성그리고 그가 국어를 훌륭히 소유한 것을 고려하여 그를 공화국 <오딴>정당 알마티 주지부 고문으로 전임시켰다. 그는 이 직책에서도 자기의 모든 실력을 발휘하였다.

빤필로브 구역의 경제발전에 한 각별한 기여에 대해, 자라나는 세대교양에서 세운 큰 공로에 대해 그리고 인민들의 친선, 민족간 합의 선전에서 적극적 사업에 대해 신 보리쓰 니꼴라예위츠에게 <빤필로브구역 명예공민> 칭호를 수여하였다.  카자흐스탄공화국 나사바예브 대통령이 보리쓰 니꼴라예위츠에게 보낸온 감사장에는 아래의 글이 적혀있다: <당신의 활동을 각개 공민을 위한 확고한 사회적 게런티가 있는 경제적으로 융성하는 국가창설에 돌려진, 나라가 택한 방침에 대한 시종일관하고 애국적인 지지로 평가합니다.>

교육분야에서 세운 공로로 그는 <카자흐공화국 교육특수자>칭호도 수여받았다. 그 외에도 그는 웨.이.레닌 탄생 100주년 기념메달, <로동로련가> 메달을 비롯하여 영예표창장들도 많이 보관하고 있다.그리고 <카자흐 땅에서 존대받는 인물들>이란 책에 신 보리쓰 니꼴라예위츠의 이름도 있다.

보리쓰 니꼴라예위츠는 역시 교사의 직업을 전공한 안해 리 라이싸 니꼴라예브나와 자식 넷을 자래워 그들에 고등지식을 받도록 뒷받침하여 주었다. 그에게는 손군들이 열명이나 된다.

-보리쓰 니꼴라예위츠, 당신은 우리 모두가 본받을 수 있는 훌륭한 생을 살아오셨는데요 장래 나라를 이끌고 나갈 젊은이들에게 어떤 훈시를 주고 싶은지요?

-아시다싶이 금년은 카자흐스탄고려인 정주 80주년의 해입니다. 얼마전에 우리가 경축행사에도 참가하였고요. 이런 행사는 젊은이들에게 아주 유익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자기의 역사를 꼭 알아야 하며 자기가 사는 땅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래야 나라를 위해 유익한 일을 하겠다는 결심이 움트거던요…그리고 이상 사람들을 존경하는 것은 젊은이들의 생활의 규범으로 되어야 하겠지요.

-감사합니다.

남경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