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년 11월 17일에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일본은 조선을 완전 히 자기 식민지로 만들었다. 따라서 조선인들은  자기 성도 이름도  일본성명으로 바꾸어야 했고 물론 민족어도 금지되었다 . 그뿐만아니라 매일 아침 동쪽을 향하여  '' 우리는 황국신민이다 .충성을 다하며 황국에 보답하겠습니다 .'' 라고 황국신민의 서사를 한후 해뜨는 동쪽을 향하여  몸을 45도 굽히며  일본천황의  만수무강을 바라는 최고경배를 하면서 동방요배를 해야했다. 일본은 특히 농업을 비롯한 여러 분야들에서 고려인들을  가혹하게 약탈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많은 조선인들은  부득불 살길을 찾아  중국으로 또는 러시야의 원동지방으로 떠나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을사조약체결 전후시기에  쏘련의 원동지방으로  이주한 고려인들의 수는 근 20여만명에 이르렀다.

쏘련 원동지방에 정착한 저선인들은  농업분야에서  많은 농산물들을 생산했고  특히 벼재배업에서 특출한 성과를 달성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고등교육을 받았고  인민경제의 여러 분야들에서  열심히 일했다. 문화생활에서는 고려말로 연극을 하는 극장이 있었고  고려말로 쓴 작품을 발표할수 있는 신문사도 있었다. 제2차세계대전전야에 일본은 청일전쟁을 도발하고 차츰 쏘만국경으로 진출하게 되자 쏘련정부는 접경부근에 사는 고려인들은 일본인들의 간첩이 될수있는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고려인들을 접경지대에서 멀리 떨어진 카자흐스탄과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키기로 했다.강제이주를 앞두고 그의 준비공작으로 쏘련내무성에서는 강제이주가 시작되었을 때 말성을 일으키거나, 방해를 놀거나 혹은 무장폭동을 일으킬수 있다는 데서 고등교육을 받은 고려인 그리고 중요한 행정기관들에서 일하는 똑똑한 고려인들을 일본간첩이라는 죄를 뒤집어씌워 미리 숙청하기로 했다. 이 준비공작시기에 쏘련 내무성이 숙청한 똑똑한  고려인들의수는  약 2800여명에 달했다.

1937년 9월 9일부터 12월 25일까지기간에 1800대의 화물열차로 약 20만명의 고려인들을 6000킬로 멀리 떨어진곳인 카자흐스탄과 중아시아로 강제 이주시켰다.최현옥은  갑자기 자기 집은 두말할것없고 가축은 물론 모든재산을 몽땅 던지고  집합 시키는 장소로 갔고 화물차에 여러 고려인들과 함께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올라 타야 했다.최련옥의 말에 의하면  자기들은 어디로 끌려가는지  얼마나 가야 하는지 아무것도 몰랐다고 한다. 가축을 운반하는 화물차에 실린 고려인들은 평균시속 50킬로메터 정도로 달리는 화물차안에서 추위에 떨며 잠을 자며 실려갔다. 며칠이 지나자  가축을 운반하는 비위생적인 화물차 안에서 많은 사람들이 병에 걸려 앓기시작했지만 거기에는 병을 치료해야 하는 의료기관도 의사도 없었다. 그러다가 한 아기가  엄마품속에서 죽은 사실도 있었다. 어린이를 잃은 엄마의 울음소리, 늙은 부모를 잃은 자식들, 친척들의 울음소리가 그칠줄을 몰랐다.  이 울음소리를 실은  무심한 시베리야횡단열차는  계속 달렸다.최현옥이 탄 원한과 통곡 슬픔의 화물차는 한달만에  목적지에 이르렀다. 화물차는 울음소리와 함께 고려인들을 하차 시키고 떠나버렸다.사면이 허허벌판이였고 차거운 시베라야북풍이  사정없이 심하게 몰아첬다. 고려인들은 땅굴을 파고 살아야 했다.

그런데 이 어려운 시기에 우스또베 카자흐인들의 도움이 없었드라면 고려인들은 카자흐스탄에서  오늘과 같은   행복한 생활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고려인들은 대를 이어가며 그들을 구원해준 카자흐인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있다.  고려인들은 카자흐인들의 너그러운 관계에보답하여 공화국 인민경제의 분야에서 성실히 일했다. 동시에 정부는 고려인들의 헌신적 노력을 높이 평가하여 많은 고려인들에게 나라의 고상한 칭호를 수여하였다. 카자흐스탄과 한국간 외교관계가 수립된후 인민경제의 모든 분야들에서 두 나라가 연계를 맺고 협조하고 있다. 대한 민국에서도 금년에 고려인 카자흐스탄 정주 80주년과 관련된 여러가지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금년8월초에 <추억의 열차>블라디보스톡에서 떠나 머나 먼 길을 걸쳐 고려인들의 첫 정착지 우스토베까지 왔다.그중에는 대학교수와 교사, 문화의 여러 분야 일꾼 그리고 물론 고려인들도 있었다. <추억의 열차>는 1937년에 고려인들이 실려온 철길로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왔다. 대표단이 우스토베에 왔을 때 이곳 고려인들은 그들이 외롭지 않다는 것을 느끼었다. 

  박연수 단장은 고려인들이 정착했을 때 땅굴을 파고 생활을 시작한 장소에 세워진 기념비에 꽃따발을 증정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우리는 블라지보스톡에서    80년전에  고려인들이 강제로 끌려간 슬프고도 아픈  시베리야 횡단열차를 타고 우선  카자흐스탄 우스또베로 출발했습니다. 그들이 겪은 비극의  역사적인 길을 추적해보며  되새겨보려는것이 우리 목적이였습니 다.     차간에 들어서자마자 마치 자기 집과 정든 고향을 버리고 강제로 추방당한  고려인들의 울음소리가 막 들리는듯했습니다.  우리는 목적이 있었고   우리  일정이  언제  끝나는가를 알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이 지루한 길을 견뎌낼수가  있었지만  그러나 그 때 시속이  평균 50킬로인  화물차에 짐승들처럼 실려가는  우리 선조들의 처지에 대한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더 가슴이 아팠습니다. 지금 우스또베에 사는 여러분들을 보면서 1937년에 강제이주당했든 선조들의 비참한 삶과 그들의 가슴아픔이  되새겨지는 것을 느끼며 동시에 바로 그 선조들을 여러분들의 모습속에서 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고려인들이 겪었던 그런 비극이 절대 되풀이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지금 카자흐스탄에는 나자르바예브대통령의 현명한 다민족국가정책에 의하여  130여민족이 신앙의 여하를 불문하고 화목하게 살고 있으며 한민족이 다른 민족을 탄압하거나 더욱 강제로 추방하는 일이란  상상할 수도 없다.     

김종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