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스탄국립 고려극장은 2일 저녁 고려인 강제이주 80주년을 맞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카자흐스탄 우슈토베까지 수난의 길을 되짚어온 '극동시베리아 실크로드 오디세이-회상열차' 탐방단 84명을  맞아  홍범도 추모제를 열었다 이날 행사에는 세계한민족포럼 참가를 위해 직접 알마티로 날아온 발표자와 패널들도 함께했고 전승민 알마티총영사와 고려인협회 관계자들도 모습을 보였다.

21년째 극장장을 맡고 있는 니 류보비 씨는 "강제이주의 길을 따라온 모국의 동포들이 1932년 연해주에서 창단됐다가 5년 뒤 카자흐스탄으로 옮겨온 고려극장을 찾아주셔서 매우 뜻깊게 생각한다"고 인사를 건넸다.독립운공가이자 한글학자로 카자흐스탄에서 생을 마감한 계봉우 선생의 증손녀 계 이리나 씨가 카자흐스탄독립운동가후손협회 회원들과 함께 나와 모국 동포들을 환영했다. 계 씨는 "15년간 독립운동가후손협회장을 지낸 아버지(계 니콜라이)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셔서 함께하지 못했다"며 "선조들의 뜻을 이어받아 한민족의 긍지를 지켜가겠다"고 말했다. 홍범도 장군은 고려극장이 1937년 카자흐스탄 크슬오르다로 옮겨왔을 때 함께 끌려와 수위로 일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고려극장은 그가 타계하기 전 해인 1942년 태장춘이 희곡을 쓴 연극 '홍범도'를 본인이 보는 앞에서 공연했다.이창주 '고려인 강제이주 80주년 기념사업회' 집행위원장이 홍범도 장군의 이력을 소개하고 잠시 추모의 시간을 마련한 데 이어 단원들은 북춤, 전통 무용, 오페라 아리아, 검무, 부채춤, 아리랑 등 다채로운 무대를 선보였다. 공연이 끝난 뒤 기념사업회의 이부영•함세웅 공동대회장은 고려극장장 등에게 기념패를 전달했다.

카자흐스탄 알마티 고려극장 1층에 1932년 창단부터 지금까지 85년의 역사를 소개하는 패널이 설치돼 있다.고려극장은 85년의 역사를 지닌 우리나라 최초의 해외 극단이자 한도를 포함한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이어가고 있는 한민족 공연단체다. 1860년대부터 한민족이 이주한 러시아 연해주에는 1920년대 말부터 자생적인 아마추어 예술집단이 많이 생겨났고 1930년에는 블라디보스토크에 노동자청년극장이 설립됐다. 이를 토대로 1932년 9월 9일 고려극장이 출범했다.소련은 고려극장을 공산주의 사상 선전과 소수민족 관리에 활용했다. 사회주의 혁명 정신을 기리거나 집단농장의 작물 증산을 독려하는 내용으로 무대가 꾸며졌고 노래 후렴구는 대부분 공산주의 체제를 찬양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고려인들은 민족 정서의 명맥을 이어가려고 안간힘을 썼다. 춘향전, 심청전 등 우리나라 고대소설을 연극으로 꾸몄고 민요 가락을 접목해 노래를 지었다. 스탈린 정권이 연해주 고려인들을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시킬 때 고려극장 단원들도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로 대부분 옮겨갔고 일부는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로 떠났다. 고려극장도 둘로 나뉘었다가 1942년 우슈토베로 이전한 카자흐스탄 고려극장에 1950년 통합됐다.

1953년 스탈린이 사망해 고려인 거주 제한이 풀리자 고려극장은 1955년부터 순회공연에 나설 수 있었다. 1959년 예전 자리로 옮겨가 크슬오르다 주립이 됐다가 1966년 당시 수도인 알마티로 이전하며 1968년 국립으로 승격됐다. 순회공연을 전문으로 하는 아리랑가무단도 이때 창설됐다. 1960년대 타슈켄트 예술대와 알마티 연극예술대 졸업생이 대거 입단해 활기를 띠었고 그 전성기가 80년대 초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고려극장의 레퍼토리에서 민족적 색채는 점차 엷어졌다. 한국어를 못하는 가수와 배우가 늘어나고 한국어를 알아듣는 관객도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현재 고려극장의 단원은 90여 명이며 연극단, 성악단, 무용단, 사물놀이팀을 두고 있다. 지금까지 300편가량 연극을 무대에 올렸는데, 한국어 대사를 구사하고 러시아어로 동시통역하는 원칙을 지켜오고 있다. 지금의 고려극장 건물은 2002년 준공됐고 2012년 알마티 한국 지상사협회 지원으로 현판을 내걸었다.

 

<한인일보>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