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민족이건 분별 없이 스탈린정책, 공산당에 대해 불순한 말 한마디, 불만의 감정을 나타내면  그 사람은 밤사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져버렸다. 까만 짚차가 집 앞에 멈춰 서면 그 날 밤 그 집에서 누구인가 사라졌다. 사람들은 죽음을 의미하는 그 짚차를 가리켜 흑까마귀라고 불렀다. 조선 반도의 항일운동에 가담한 조선 지식인들 , 계몽가들도 대거 체포된 뒤 흔적도 없이 사라저갔다.  허위와 밀고, 공포의 시기는 제2차 세계대전이 일기까지 수그러 들지 않았다. 사람들은 서로를 믿지 못하고  부모자식간에도 신뢰가 깨저 버린 암흑의 천지에서 살아가려면 말없이 꾸준한 노동과 남과의 최소한 접촉으로 아니면 스탈린정책과 공산당을 찬양하는 선동활동으로 자신의 안전지대를  구축했다. 30년대 일제가 침투시킨  간첩들이 여럿 잡히면서  소련정부는 고려인과 일본인을 구분하기 어렵다는 구실로 고려인 집성 촌과 마을에서 수시로 수색작업을 거행하다 그들의 비위를 건드리는 말이나 태도가 보이면  무조건 반동분자가 아니면 일본 간첩으로 치부되여 잡혀갔다. 많은 고려인이 일제를 피하여 러시아에 들어왔고 전쟁 당시 주저 없이 일제와 싸웠는데 이제는 일본인과 생김새가 같다는 이유로  탄압 대상이 되다니 참으로 하늘을 우러러 탄식만 나왔다고 했다.  나라를 잃고 떠돌이 신세가 되여 연해주에 자리를 잡고 배 곯지 않고 살음직 해 졌는데  날로 격화되는 인간개조 사업은 개성을 버리고 무리가 되여 모든 지시에 고분고분따라주는 존재만이 살아남는  새로운 시대가 내도했다. 서로 눈치를 살피며 한숨도 크게 쉬지 못하던 암울한  30-40년대  소련현실 이였다.

(지난호의 계속)      

다시 길을 떠났다.

초가을  이곳 저곳에서 추수준비를 하는데 문득  일주일 사이에 모든 일들을 정리하고 새로운 곳으로 이사 갈 것이니 간단하게 짐을 싸라는 상부지시가 하달되였다. 고려인들은   당황하고 놀랐다.  할아버지는  시집 간 딸 순희와 사위,  5살 배기 손녀를 앞 세우고 아내와 아들들을  끝내  기다리지 못한채  화물 열차에 올랐다.  8가족이 탈수 있게  판자로 이층 침상이 만들어졌다. 어린애와 늙은이가 있는 가족이 아래 침상을 차지하고  젊은 측이 위로 올라갔다.  일주일 정도면 도착하리라 약속하던 날은  지나갔는데 열차는 시베리야의 어떤 역에 멈추어 섰다. 사람들은 얼른 물바게츠를 들고 뛰여 내렸다.  건조시킨 밥도 이젠 바닥이 나고 많지는 않지만 남은 쌀로 죽이라도 끓여먹어야 했고 그것마저 동이 난 가족은 역에서 빵을 사다 오차를 끓여 마시며 배를 채웠다.  될수록 많이 자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였다.  잠이 들면  허기도 잊어지고 시간도 빨리 흘렀다. 설마 시베리야 밀림  한 가운데  내려놓지는 않겠지 하며 이웃끼리 마음을 나누기도 하는데 함께 가던  15살 소녀가  곧잘 아리랑 노래를 했다. 할아버지가 지어준 가사도 잊지 않았다.   만삭이 된 엄마가 계속 짜증을 내며 구박을 해도  목청을 돋구었다.  .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불술기 바퀴는 돌아 가는데

우리네 갈 곳은 어디메냐” 

고려인들은 기차를 불술기라 했는데  술기는 수레의 함경도 방언이다. 

처량한 노래소리가  들리면 사람들은 차량 문을 열어놓고  그 앞에 모여 앉아  지나가는 시베리야 풍경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끝없는  사색에 잠기군 했다.   연해주를 떠날 때는 여름 더위가 막바지에 접어들어   낮에는 여전히 무덥지만 아침저녁은  서늘하던 가을걷이가 한창일 때였는데  어느새 해빛은 점점 멀어지고 잔뜩 찌프린  구름만 어디론가 급히 밀려가고 있었다. 철길 옆에는 노란 잎새들이  수북수북 쌓여있는데  바람이 불어오면  땅에서도 안착하지 못한 잎사귀는  이리저리  밀려간다.   정처 없이 달리는 열차에 실린 고려인들의 운명을  상기시키며…

시베리야  밀림의  철길 넘어 자작나무 아래에는 하나 둘 고려인들의 무덤이 늘어갔다.  시베리야의 짧은 가을은 가고 10월 중순인데 소복소복 눈이 내렸다. 추위가 닥치자 또 한가지 일거리가 생겼다.  물울 구하고  땔감을 구해야  다음 정거까지   차가운 차량을 때때로 덥힐 수 있었다. 눈발이 날리면서  밤마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기침소리에  잠들 수 없고 어린애들은 열이 올라 허덕이는데  열차에 한 명밖에 없는 한의원은 지쳐서 한 차량에서 다른 차량을 옮겨 다니기도 어려워 했다. 그 해는 왜 그리 일찍 눈이 많이 내렸는지, 고려인들의  텅빈 가슴을 눈으로 채워주려는 듯이 내리고 또 내렸다. 철길가 무덤들위에 햐얀 눈이 덮이는데  함께 가던  임산부가  해산했다. 날이 밝으려면 아직  멀었는데  임산부의 신음소리가 멎고 새 생을 알리는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가는 인생에 뒤이어 새로 오는  생명. 이것이 인생의 최고 의미와 뜻이며 철학이다. 아이의 울음소리에 사람들은 오랫만에 빙그레 미소 지으며  마음을 누르던 짐을 조금 내려놓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날씨가 푸근하여 오랜만에 차량 문을 열었다.  두 달째 물을 모르는 퀴퀴한 육체냄새,  연기와 먼지, 꾸겨지고 때가 오른 이불냄새, 밤사이 가득 차는 오물바게츠의 지린내. 날씨가 좋은 날에는 아무리 싸늘해도 한참 씩  차량 문을 열어두었다.  애기엄마도 오랫만에 갓난쟁이를 안고  문앞에 다가왔다.애기 귀저기가 부족하여 여기저기서 얻어오긴 했지만  눈을 녹여  빨래를 해도 잘 마르지 않아 애를 먹던 중이였다. 귀저기 빨래는 차량안 아낙들이 돌아가며 도와주고 눈녹인 물이라도  애기 목욕을 시켰다. 애기 목욕 시킬 때만 되면 서로 돕겠다고 하여 아예 차례를 정해놓았다.  애기 이름은 차량에서 가장 나이가 지긋하신  할아버지가 나제스다라고 했는데 조선어로 번역하면 희망이라는 뜻이다.  사람들은 나제스다보다 희망이라고 불렀다. 희망아, 희망아 하고   반복하면  진짜 희망이 보일 듯 기대감에 부풀었다.애기엄마는 문앞에  앉아  잠든 애기를 무릎에 눕혔다. 불시에 덜커덩하더니 열차가 급정거했다. 그러는데 애기엄마의 외마디 비명이 날카롭게 울렸다. 무릎위에 눕혀논 애기가 포대기에 싸인채 문밖으로 날아가버렸다. 애기 아버지가 곁에 있다 그 광경을 보고 열차가 완전히 멎지도 않았는데 차량을 뛰여내려  애기가 날아간 쪽으로 달렸다. 내려 그를 도우려고 사람들이 뒤이어 우르르 뛰여내려 뒤를 쫓았다.  철길 눈언덕위에 애기 포대기가 보였다. 애기아버지가 포대기를 잡아당기자  포대기만 나오고 애기는 눈속에 거꾸로 박혀 있었다. 급히 애기 다리를 당기자 두터운 실로 짠 모자를 씨워 논 머리가 빠져나왔다. 윗층 아낙이 실이 좀 있다며 하루새 떠준 따뜻한 모자였다.   파랗게 질려 애기는 처음 울지도 못하더니 애기아버지가  가슴에 꼭 끌어안고 차량쪽으로 발길을 옮기는데 . 애기 울음 소리가 대기를 가르며 널리 울려나갔다. 사람들은 그제야  “살았구나” 하고  가슴을 쓸어 내렸다. 한의원이 소식을 듣고 달려와 애기가 많이  놀랐다며 거므스럼한 환약을 풀어 입에 넣어주고는  붉으레한 가루를 물에 타 애기정수리에 발라주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희망은 그렇게 내던져 졌는데 아무런 탈 없이 건강하게  전 열차의 사랑을 받았다. 

거의 두 달 반 거북이 걸음을 하던 열차가 드디여 카자흐스탄의 어느 황야에 멈추어 섰다.  크슬오르다에서 300킬로 상거한 잘라가스철도역에 내려서  또 하루종일 걸어 간  들판 가장자리가 그들이 살 곳이라며 짐을 풀라고 했다. 말이 짐이지 70일 넘게 오면서  추워 껴입고  없는 사람에게 나누어주고 남은 옷가지 한 두벌이 전체 짐이였다.  시베리야에는 밀림이 있어 황페하지는 않았는데  그들이 멈추어 선 곳은 나무 한 그루, 풀 한포기 없이  모래바람만   살을 에이는 공터였다.   끝없이 펼처진 황야의 저 멀리에  둥그스럼한  천막이 여러채 빙둘러 앉았는데 사람이 사는 집인지 축사인지 아니면 길 잃은 행객을 위한  임시 숙소인지 알 수는 없지만   허허벌판에 서 있기보다는 낫을 거란 생각에  남자 두 명을 알아보고 오라고 보냈다.   한참만에 돌아온 그들은 그게 양치기 하는 카사흐 유목민이 사는 유르타라는  집이라고 하면서   우리가 땅굴을 팔동안 유루타  한 채를 비워주겠으니 여자들과 어린애들이라도 재우라고 했다. 그리고  당신들은 생김새도 우리와 비슷하고  원동에서 먼 길 온 손님이니 오늘 저녁식사에   모두를 초대한다고 했다.

 

이 정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