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고향을 떠난것은 6.25전쟁직전이며 이윽고 나는 군복을 입고 전선으로 떠났다. 집떠나는 19세인 나를 바래주며 손을 흔들던38세의 어머님 모습... 이것이 영원한 이별의 마자막 순간이 였다는것을 나는 몰랐지만 그러나 어머님은 그것을 심장으로 감촉하였고 불안스럽게 높이 뛰는 가슴을 달래며 길떠나는 나에게  운명의 고개를 무사히 넘도록 간절히 바랐을것이다. 그세월  아득하니 벌써 70, 타향에 머문 나는지금도  예전처럼 한반도가 통일되는  날을 기다린다.  그때 고향에 두고 부모형제들은 물론 고향마을사람들의 얼굴들이 눈앞에 떠오르며 어디에서 살던 내마음은 그들이 있는곳으로 자꾸 돌아간다..그런데 내가 북한의 고향은 보지 못했지만 고향으로부터 이웃이나 다름없이 가까운 거리에 있는 남한에 기회가 생겼다..   

카자흐쓰딴의 수도  알마따시에 있는 <레닌기치>신문사의  기자였 나는 구쏘련기자들과 함께 한국언론재단초청에 의하여 대한민국 서울에 도착한것은 카자흐쓰딴이 독립한 직후 였다. 서울에 도착하자 놀란것은 고층건물들이 들어찼고 왕래하는 자동차들이 대단히 많았고 늘 길이 메여 있었다. 도착한 다음날  우리는 우선  거리를 구경했는데 여러 상점들에는 질좋은 상품들이 가득했고 특히 남대문시장에는 없는것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를 첫날부터 몹시 놀라게 했다. 쏘련에서는 시기에 상품이 부족하여 사람들이 늘 줄을 서서 오랫동안 차례를 기다리군해야 하는 형편이였다.

다음 날 우리는 직승기를 타고 신라의 수도 경주를 비롯하여 여러 도시들을 관광하였다. 자동차생산공장,조선소, 삼성전자 그리고 기타 여러 식료품생산공장 등을 관광했다. 그런데 쏘련이 해체되기전까지 우리는 자 모쓰크와에서 방영하는 텔레비 보도를 통하여 한국소식을 알고 있었는데 그것에 의하면 젊은이들 주로 대학생들이 거리에서 화염병을 던지며 경찰들과 충돌하는 장면 자주  보여주었다. 그런데 지금 내가 자기 눈으로 직접 보는 서울은 전혀 다른 서울이였다.결국 나중에 알고 보니 대한민국은 세계의 10대 경제강국에 속하며 도시는 아주 깨끗했다. 많은 사람들이 자가용차를 소유하고 있었으며  일반인들의 생활수준은 쏘련사람들의 생활수준보다 훨 높았다. 그럼에도 불고하고 나는 서울에서 한가지 이해하지 못한것이 있었다. 그것은 첫째로, 그 어느 날 저녁 때 지하철을 타고 극장구경을 가고 있을 때였다. 차간에는  사람들이 많았고 빈자리는 없었다.그런데 좌석에 앉고있는 사람들중에는 젊은이들이 많았고 그리고 서있는 사람들중에는 순에 가까운 노인들도  있었다. 동방 예의지국인 한국에서는  젊은이들은 바로 자기 자리앞에 서있는 노인들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고 아주 무관심한 태도였다. 나는 그 때 정거장에서 차간으로 방금 들어온 늙으신 여인에게 자리를 양보한 일이 있었다나는 한국의 젊은이들은 왜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저절로 떠올랐다. 어떤 사람의 말에 의하면 한국의 젊은이들은 규정된 출근시간보다도 훨전에   직장에 나가며 퇴근시간후에도 오래동안 남아서 누구의 지시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전력을 다하여 정신노동이나 육체노동을 하기 때문에 장려금도 남보다 더 많이 받을 수 있다는것이며  그들은 하루노동에   몹시 피로했고 출퇴근시간에 차간에 앉아있는것은 심한 노동후  마치 유일한 휴식시간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전체 한국인들이 그야말로 열심히 일하기 때문에 한국은 발전하며 따라서 일반인들은 물론 나아가서는 국가 전체  국민들의  생활수준이 제고 된다는것이였다.둘째로 이해하지 못한것은 한국인들인 이광범이와 김진섭의 사생활이다.

서울방문때 알게 되었고 그후 자주 서신연락을 하든  한국 비즈니스맨 이광범이와 김진섭이 알마따에 나타났다. 그들은 우리 다챠에 머물게 되었고  그들의 친구들까지 모두 5 ~ 6명이 온겨울철을 보냈다. 그런데 그들은 집안에서 담배를 계속 피웠고 이광범의 코수염은 늘 담배연기에 그을려 있었다. 그리고 때때로 면도를 한후 향수를 치는데 옷에 배인 담배연기냄새와 향수냄새가 한데 어울려 특별한 냄새를 냈다. 술은 추운지방에 사는  러시아인들보다도 못하지 않게 많이 마 셨다.담배연기와 술냄새 그리고 향수냄새는 집안에 침투되었고 담배꽁초는 집주위 여러 곳에  되는대로 던젔다.  봄에 나타난  이웃집주인은 이광범이와 김진섭이 담벽넘어로 온 겨울동안 아주 열심히 던진 모든것을 우리 다챠담벽넘어로 다시 던젔고 대단한 항의를 했다셋째로 이해하지 못한것은 이광범이와 김진섭은 조국통일을 원하지 않는다.  나는 우리 민족의 가장 성스러운 일은 조국통일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러나 이광범이와 김진섭은 통일을 하게되면 북한을 먹여살려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자기들은 일을 더해야 하며 한국은 또다시 빈궁한 나라로 전락된다고 말한다 . 나에게는 그들의 견해가 전혀 이해가 되지 않 는다. 하나의 민족이 통일하여 한 집안식구처럼 화목하게 살아야 하지 않는가?!한국을 방문하는 과정에 고향에 대한 생각이 나의 머리속에서 계속 맴돌고 있었다. 통일이 되었더라면 지금 당장 고향으로 달려갈 있었을 것이다. 한반도의 남쪽을 거닐면서 북쪽으로 가지 못한다니...이것은 실로 비극이었다. 나는 6.25 전쟁직전에  고향을 떠났고 정전시기에는 고성에 있었다. 고향집떠나는 나를 바래주며 손을 흔들던  어머님의 그 얼굴이 보고싶다. 그세월 아득하니 벌써 70,
앞으로 얼마나 더 걸릴지는 모르지만 나는 통일을 꿈꾼다. 한반도가  통일면 나는   만사를 집어치우고 우선 어머님과 이별한 내고향 산막몰을 찾아가는 희망속에 살고 있다.

                                                                                                      

김종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