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은한반도에서태어났지만‘코리안디아스포라’를따라서만주와연해주로그리고중앙아시아로퍼져나갔다. 하와이와미국그리고유럽에서도아리랑은불려졌다. 그래서한민족의해외이주경로는곧아리랑로드이기도하다. 

 

고려인의이주로이며애환의길이기도한‘중앙아시아아리랑로드’는고려인최초정착지우슈토베의카라탈강변에서부터시작된다. 한반도를떠나와연해주에서살던고려인들은중앙아시아로이주후또한번의재이주과정을통해중앙아시아각지로퍼져나가게된다. 재이주는헤어진가족들과상봉하기위해서또는좀더생활여건이나은곳으로이루어졌다. 우리는이아리랑로드를따라가면서그들의과거, 현재그리고미래를볼수있게된다. 2017년고려인중앙아시아정주 80주년을앞두고한인일보는중앙아시아고려인들이만든아리랑로드를따라가는특별기획을마련하였다. 이번취재는아리랑로드를따라가는것이었지만과거의관점이아니라미래의관점에서새롭게바라보자는취지에서시작되었고더불어, 알려지지않는사실들을발굴하는노력도게을리하지않았다. 고려인들은분명우리와함께미래를설계해야하는동포들이기때문이다. 

이길을걸으며우리는신한촌에서출발하여갖은고초와역경을겪으면서도동포들속에서우리말과전통문화를보존하는데애를쓴고려극장을만나게되었고끄즐오르다와아랄해의항구도시아랄스크시가고려인의도시라는것도새삼발굴하게되었다. <편집자주>

<글싣는순서>

카라탈군의로고에벼그림이있는이유

우슈토베에서만난고려극장의흔적

크즐오르다, 고려인의땀으로중앙아시아최대벼생산지가되다. 

고려인의도시아랄스크…. 아랄해의물고기는고려인선장들이잡았다. 

 

카라탈군의로고에벼그림이있는이유

취재의시작, 카라탈강

 

<카자흐어로‘카라탈군’이라고적혀있는문양한가운데말과함께벼를형상화한이미지가들어가있다>

카라탈강은세계에서 4번째로큰발하쉬호수를향해흘러가는세미레치예지역(알마티주에해당)에있는 7개의큰강중의하나이다. 흉노가한무제에게패한후재기를도모한주요거점중하나가바로카라탈강변이다. 그리고유라시아의마지막유목제국을건설한준가르(몽골족의일파)가청나라의토벌에끝까지저항했던흔적이남아있는곳이기도하다. 그만큼카라탈강변은건조한중앙아시아스텝중에서도만년설이녹아내린물이흐르는기름진땅이었다. 

이런곳에고려인들이이주를해왔다. 바로, 1937년가을이었다.  37년 10월초, 미하일할아버지가한달간타고온기차에서내린곳은카라탈군우슈토베역이었다. 소년미하일과 4명의형제들은부모님의손을잡고‘말술게’라고하는말수레를타고다시한시간가량걸려서바슈토베에짐을풀었다. 

“우리는땅굴을파고그앞에숱한갈대를꺽어와서불을땠다. 거기서그렇게동삼(한겨울, 겨울철의 3개월인음력 10월, 11월, 12월을말함)을보내고 38년도봄부터농사를짓기시작했소”미하일할아버지는기자가믿기어려울정도로정확한기억력을자랑하며당시를회고하셨다. 

바슈토베언덕에는고려인들이첫해겨울보낸토굴이보존되어있고, 그앞에강제이주기념비가서있다. 그리고시선을언덕쪽으로돌리면한글이새겨진철비석이서있는고려인공동묘지가눈에들어온다. 바슈토베는카자흐어로써‘우두머리봉우리’라는뜻을가지고있다. 단 2~3분만에올라갈수있는높지않은이언덕은북쪽스텝을지나온차가운삭풍을막고서서토굴과공동묘지를품에안고있는듯한형상을하고있다.  

 

<천미하일할아버지>

<천미하일할아버지의뒤뜰텃밭, 농촌고려인들은아직도텃밭에서직접야채를재배하는등자급자족생활을한다>

<천미하일할아버지의뒷뜰창고벽면에걸려있는호미모습>

“그러나 38년봄부터고려인들이바로벼농사를시작했던것은아니었소. 카라탈군내에만고려인들의꼴호즈(농업조합)가 20여개가만들어졌지만벼농사는 3~4년뒤부터짓기시작했소. 메마른땅에물만댄다고벼농사가바로되는것은아니거든. 이후대조국전쟁시기(2차대전시기: 1941~1945)에는이미카라탈강변을황금물결이춤추는벼농사지역으로탈바꿈시켰소. 그래서우리군의상징문양에벼그림이들어가있질않소. 오시면서길가에서있는대형상징판을못보았소”

기자는주의깊게보지않으면지나치기쉽상인도로표지판옆상징판을보았다고대답하자“그뿐아니고우리카라탈군에서는윤세르게이라는노동영웅을배출했소. 소련이해체되기전까지만해도카라탈강변의수백만평의농토에는매년 9월초가되면황금물결이일렁이기시작했소!  그걸바라보고있으면부모님이생각나눈물이나오….. 우리어시~(부모라는의미의고려말)들이손으로수로를파고만든논들이거든”천미하일할아버지(91)는이렇게기자에게거침없이말했다. 

그러나, 2016년현재, 카라탈군의사정은미하일할아버지의기억속과거와는너무나사정이달라져있다. 농사를짓는젊은고려인이없는것뿐아니라거주하는고려인수자체가급격히줄어들어현재는겨우 3000명정도가살고있을뿐이다. 또한, 고려인들이중앙아시아로이주후제일먼저지었다는카라탈군원동마을에있는‘원동학교’는카자흐이름인‘예스켈디학교’로바뀌었고, 220명의초중고과정학생중고려인은 30명에불과했다. 고려인선생님도전체 30명중 7명이다. 많은젊은이들이도시로나갔기때문이다. 

한국어교실에는태극기와단군초상이전면에걸려있고벽에는한국의풍습과자연사진이붙어있고, 뒷쪽에는장구, 북등소품이놓여있지만정규수업으로써의한국어수업은더이상진행되지않았다. 아직도특활활동의하나로한국어를선택하는고려인학생들이있긴하지만언제폐강될지알수없는상황이다. 이미이들에게도한국어보다시급한것이카자흐어학습인것이엄연한현실이되었다. 

한국어교실을운영하는교사김예브게니야씨는“수강생이 10명도안된다”고사실을얘기해주었다. 기자가둘러본이학교박물관에는이학교출신유명인사들의사진이벽에걸려있었다. 김유리카자흐스탄초대헌법위원장, 김로만하원의원등정계, 문화, 학술, 스포츠분야등에서두각을나타낸분들이사진들이었다. 이들은바로카라탈강변에서태어나벼농사를짓는부모를보면서자라나서고려인의위상을크게떨친분들이었다. 

기자는카라탈강변의갈대밭을옥토로바꾼현장에서화려했던고려인들의과거역사와함께그리밝지않은미래의모습도오버랩되는것을느낄수있었다. 미하일할아버지나안발렌틴씨(77) 등중앙아시아이주 1세대와 2세대들의시대가아닌차세대들이주역이될가까운미래에도저영광들이이어질까? 우리말을못하는현재의고려인들과모국과의연계는과연언제까지이어질까? 등의의문이일어났다.

또한기자는중앙아시아이주직후고려인지도자들이동포들에게‘이땅에서나는새로운조국을찾았다’고말하며현지정착에모든노력을쏟아부을것을역설했든것처럼, ‘모국과소통해야만살수있다’라고외쳐주길기대해보았다. ‘이젠모국이선진국과어깨를나란히할정도로발전했기때문이다. (이기사는한국언론진흥재단이후원하였습니다).

김상욱

(따음후에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