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명절과 의식. 주지하는 바와 같이 한반도에서는 수세기를 내려오면서 시간을 계산하는 전통적 방법을 이용하는데 그것은 기원전 2천년 중순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 때 중국 선조들이 달력의 기본을 만들었는데 그것은 월상에 근거한 것이었다. 한반도에서 전통적 달력을 1894년까지 즉 그레고리 우수력에로 넘어갈데 대해 광포되었을 때까지 이용하였다. 그러나 현대 한국에서는 두가지 달력 즉 양력과 음력 달력이 동시에 이용되고 있다.

새해는 음력의 첫 날에 시작되었다. 양력으로는 이 날이 보통 2월이 된다. 때문에 원동에서는 1월을 겨울의 달로 간주한 것이 아니라 봄의 달로 간주한 것이 당연한 일이다. 

설날 혹은 설. 초생달의 날에 따라 1월말 또는 2월에 맞이하는 설날은 한반도에서 가장 즐기는 민족의 명절이다. 예로부터 이 명절을 생활에서 새로운 출발점으로 간주하였다. 때문에 음력설 전야에 특히 방안을 깨끗이 청소하였고 빚을 갚아주었으며  새 옷을 기워 입었고 아이들이 어른들에게 세배를 하였으며 서로 선물을 주었다. 카자흐스탄에 독립과 자유의 양심이 오게 됨에 따라 카자흐스탄 고려인들에게 설날도 찾아왔다. 설명절은 사회적 의의가 있는 행사로 되었다. 카자흐스탄고려인협회와 지역에 있는 그의 분회들이 설날을 맞이한다. 보통 설명절을 휴일에 맞이하니 달력에 적힌 설날과 맞지 않을 수가 있다.

카자흐스탄고려인협회는 2005년도에 처음으로 설을 달력이 적힌것 보다 일주일 늦게 맞이했는데 그것은 주에 있는 분회장들과 고려인 단체의 기타 지도자들이 다 와서 같이 설은 맞이하기 위해서 그랬던 것이다. 설맞이 프로그램이 아주 다양했으며 이 음력설은 고려인 디아스포라의 역사에 기입되었다. 명절 행사에는 새로운 부분들도 많았다. 예를 들어 카자흐스탄고려인협회가 제정한 상금과 아리랑 소상 수여, <우수한 분회 명칭>을 받기 위한 콩쿨결과 광포 및 기타가 그런 부분들이다. 

한식 – 한식은 자손들이 조상의 산소를 찾아가 제사를 지내는 큰 봄명절이다. 한식은 일년에 한번 즉 동지 (12월 22일 밤) 이후 105일째 되는 날에 맞이한다. 양력으로는 4월 5-6일 혹은 음력으로는 1월이나 2월이 된다. 이 날 조상의 제사를 지내는 의식이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그레고리 우수력으로는 4월 5-6일 (드물게는 7일) 인데 대체로 모두가 5일날에 산소를 찾아가며 그 어떤 원인으로 그 날에 가지 못한 사람들은 6일날에 간다. 때로는 이 날을 <찬밥을 먹는 날>이라고도 하는데 그것은 이 날 불을 피워 뜨거운 음식을 하지 못하게 되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한인들은 그에 다른 의미를 담았는데 봄파종의 바쁜 시기라고 한다.

추석.추석은 – 음력으로 8월 15일이다. 이날 추수를 끝냈으니 추수절로, 가을의 만월 축제로 간주하고 명절을 쇠였다. 추석에는 햇곡물이나 과실로 특별한 음식을 만들어 우선 제물을 바치기 위해서였다. 음식중에서 송편이 대표적인데 그것은 큰 뻴메니와 비슷한 떡이다. 푸른 색과 흰 색의 송편이 있는데 푸른 떡에는 쑥을 섞은 것다. 송편에는 팟, 밤, 유유바로 소를 만들어 넣는다. 추석명절에 햇쌀로 백주를 많이 만들었다. 백주는 조상의 제사상에 꼭 올라야 했으며 친척들과 이웃들, 각종 놀이 참가자들 지어는 지나가는 행인들에게도 백주를 대접하였다. 술과 마찬가지로 닭도 추석에 없어서는 안될 음식이다. 봄에 깐 병아리를 자래워 추석에 먹는 닭고기가 몸에 좋다고들 하였다. 때문에 닭을 추석때까지 키워 이상 사람들에게 선물로 주기도 한다. 

CIS 고려인들도 이 명절을 계속 맞이하였다. 하긴 그들에게는 이 명절날에 조상의 제사를 지내는 것을 연상시키니 낮에는 산소를 찾아가 제사를 지내고 와서 저녁에는 모여서 추석명절을 맞이하기도 한다. 지금은 추석이 점차적으로 가정에서 맞이하는 명절의 범위를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단오. – 단오는 음력으로 5월 5일이다. 단오는 일년중에 양기가 가장 왕성한 때라고도 한다. <단오>명절의 의미는 농민들이 이 때에 이르러 이미 파종을 끝내고 벼의 첫 싹을 보았다는 것이다. 농민들은 모여서 쉬면서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민속놀이도 조직했다. 동시에 단오는 여름 전야작업을 의미하기도 하였다. 앞으로 벼의 싹을 잘 간호하여 자래우고 가을에 좋은 수확을 거둘 농사의 중요한 단계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쏘련 시대에 단오명절이 잊혀졌었다. 그런데 현재 카자흐스탄의 고려인들은 <5월 단오>라는 명칭하에 이 명절을 공개적으로 맞이한다. 가정에서는 단오를 쇠지 않는다.

공식적 기념일들. 카자흐스탄공화국에서는 민족절, 국가명절, 직업적 명절과 기타 명절을 맞이한다. 민족절은 특별한 역사적 의의를 가지고 있으며 카자흐스탄의 국가제도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준 사건과 기념하기 위해 카자흐스탄공화국에서 제정된 명절이다. 민족절 기념은 중앙 및 지방 국가 기관들에서 공식적 행사진행과 동반된다. 국가명절은 사회정치적 의의가 있으며 카자흐스탄 국민들이 전통적으로 맞이하는 명명절이다. 민족 및 국가 경절의 권한이 없는 직업적 명절과 기타 명절은 공민들이 직업에 따라 별도로 맞이한다.

카자흐스탄의 고려인들은 모두와 함께 국가명절, 민족절 및 직업적 명절만이 아니라 라마산 (무술림들의 신성한 재계의 달), 꾸르반-바이람 (라마산이 끝나는 날), 그리스도 부활제와 성탄절도 맞이한다. 이 모든 명절이 휴일로 되여있다. 이 외에도 많은 기타 명절, 축제, 민속놀이가 있다. 카자흐스탄이 독립된 후에 카자흐인들이 처음으로 옛 무술림 명절인 나우루즈를 맞이하기 시작하였다. 이 명절을 모두가 좋아하게 되어 지금은 나우루즈를 카자흐스탄의 전 인민이 다 맞이한다.

쏘련 시대에 민족간 교제, 민족어로부터 러시아어로의 언어교체, 공식적 신분증명서에 성명의 규격화와 통일화, 민족간 결혼과 잡혼은 고려인들의 인명학 혁신에 영향을 주었으며 성들에 일련의 새로운 형태를 부여했다. 첫째로 고려인들의 이중 성이 나타났다: 예를 들어 니 – 리, 오를로바 – 김 및 기타가 등이다. 둘째로 고려인 여성들은 남편의 성을 따르기 시작했는데 쏘련 시대에도 이것이 그 때 드문 현상이었다. 셋째로 때로는 어머니의 성을 따르는 때가 있었다. 그런데 전통적으로 한반도에서는 아버지의 성만 따랐다.

이름을 지어 줄 때도 현저한 변동이 있었다. 1960년도부터 러시아 주민들 사이에서도 없는 특별한 서양 이름을 주기 시작하였다: 브루트, 까를, 마르스, 옥따위안, 루돌프, 웨녜라, 에지따, 에밀리야 및 기타 이름들이다. 이것은 또한 남녀 형제들의 이름의 돌림자를 쓰던 옛 조선전통과도 연관되었을 수 있다. 이에 있어 첫 음절에 자주 돌림자를 썼다: 만삼, 만금, 만일 등. 이 전통을 따르면서 쏘련 고려인들은 자식들의 이름의 첫 자에 돌림자를 썼다. 아마 전통적인 러시아 이름이 불충분했던 모양이다. 때문에 고려인들은 자주 서양 이름을 자식들에게 달아 주었다. 농촌 지방에 고려인들이 집합하여 살았기 때문에 그들의 자식들이 한 학교에서 공부하게 되었다. 이런 경우에는 한 반에서 같은 성과 이름을 가진 김 스웨틀라나나 박 쎄르게이가 3-4명이 공부할 수 있었다. 때문에 부모들은 드물고 아름다운 (부모의 생각에 따르면) 이름을 자식들에게 지어 주었다.중아시아와 카자흐스탄의 원주민들에게 있어서 전형적인 이름을 고려인들에게 주는 것이 보급되지 않았다. 민족 잡혼의 가정에서 자식들에게 그런 이름을 주는 것은 드문 현상이 있었다. 이런 아이들의 아버지는 주로 고려인이 아니다. 

고려인들에게 부칭을 주는 것이 이름을 지어주는 현대 형태의 새로운 요소로 되었다. 부칭을 지어주기 위해서 러시아 접미사 –오위츠, -오브나, -예위츠, 예브나를 이용한다. 현대 고려인들의 부칭은 ㄱ/아버지의 이름으로 지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아버지의 성명이 손자준이라면 아들의 성명은 손 라브렌찌 자주노위츠가 되며 아버지의 성명이 조명희라면 딸의 성명은 조 왈렌찌나 명희예브나가 되는 것이다. ㄴ/부칭을 만들 때 또한 러시아러로 불리우는 아버지의 비공식적 이름을 이용할 수 있다. 이 경우에는 공식적 서류에 기록된 아버지의 이름과 자식들의 부칭이 다를 수 있다. ㄷ/아버지의 공식적 이름으로 지을 수 있다. 한 가정에서 맏 자식들의 부칭이 없는 경우가 고려인들 사이에서 비교적 특징적이고 일반적으로 알려진 현상이다.

1990년대에 필자가 딸듸꾸르간주에서 전야작업 과정에 수집한 자료들의 분석은 현대 인명학의 전통적인 요소와 새로운 요소를 양적으로 대비해볼 가능성을 주었다. 까라딸 구역의 뗄만촌쏘베트 지역에서 거주하는 고려인 353명중에서 27명 – 7,7%에 전통적 형태에 따라 이름을 지어 주었고 조선 성+러시아 혹은 서양 이름+부칭은 190명 – 50,9%였다. 우스토베시에 사는 257명의 고려인들 중에서 세 단어로 된 조선이름을 가진 사람이 21명-9,3%; 조선 성+러시아 또는 서양 이름을 가진 사람이 97명-37,7%; 성, 이름, 부칭을 가진 고려인이 139명-54,1%였다. 10명이 아버지 이름으로 만든 부칭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부칭을 가지고 있는 고려인 총수의 11%를 이루었다.

 

김 게르만 – 역사학 박사, 건국대 (서울) 역사강좌 교수,

중앙아시아 센터 소장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