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의 증심인 상무지구에서 광산대로를 따라가다 수완지구 방향으로 우회전하여 가면 왼편에 주택가가 펼쳐져 있다. 크게 다를 바 없는 2-3 층짜리 주택, 도로에 접한 상가들이 늘어서 있는 주택가다. 광주광역시 광산구 월곡동 일원이다. 하지만 이곳에는 특별한 이들이 마을 (공동체)을 이루고 있다.고려인들이다. 3000여명이 살고 있다. 러시아와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에 흩어져 살아온 동포들이다. 이들의 선조들은 19세기 말 연해주로 건너갔고, 다시스탈린 치하(1937년)에서는 중아시아로 강제이주당했다. 이어 중아시아 각국이 소련 해체로 독립하자, 또다시 유랑의 길에 오른 «디아스포라»의 전형이다.

(제32호 계속)

2)기타 생활 문화  

고려인들의 강제이주는 극동에서 직장별, 직업별,지역별로 실시되었다. 따라서 가족이나 친지들이라 하더라도, 또는 여행이나 업무차 다른 지역에 가 있는 경우에도 그들이 원하던 지역, 원하던 사람들과 함께 이주하지 못했다. 따라서 “레닌기치”에서는 한민족의 전통인 이산가족 찾기와 죽은 사람에 대한 부고를 광고 형식을 취해 게재했다. 그러나 무료로 기사를 실어 주는 것은 아니었다. 광고 크기에 따라 단가를 달리했다. 

이름있는 기자이고 수다한 텔레프로젝트 지도자인 최 엘라 안드레예브나에게 있어서 금년은 주년일이 많은 해로 되었다. 그는 8월 20일에 탄생 주년일을 맞이했고 지난 2월에는 <카자흐스탄>텔레 방송에 공화국 고려인 소수민족의 생활에 대한 첫 방송 <고려사람> 첫 방송이 나온지 25주년이 되었다. 고려인들에 대한 첫 방송은 음력 설 맞이에 대한 것이었다. 엘라 안드레예브나의 모든 생애와 창작적 길은 기자의 사업과 고려인 소수민족과 불가분하게 연계된 것이였다.

 촌락에 이슬람 최대도시인 ‘카이로’‘바그다드’이름 붙이고

‘비비 하늠’모스크 등 거대한 건축물 건설, 이슬람 최고 문화도시로

북쪽의 우즈베크, 서쪽의 이란‘사바피’에 밀려 동남쪽으로

후예 바부르, 인도 정복하고 무굴제국 창건 고도의 문명 이어가

상징물과 선전은 반드시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브래타니아 백과사전은 선전을 정보보급, 즉 사실, 소문, 허위 또는 사회여론에 영향을 가할 목적으로 제공하는 허구의 일로 정의합니다. 달리 말해서 선전은 상징물(언어, 플랭카드, 기념비, 음악, 특수 기호, 동전이나 우표에 그린 그림 및 기타)을 이용하여 대중의 신념, 태도와 행동을 교묘하게 조작하고, 목적을 전환하기 위해 사용합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공산당의 지도와 통제 하에 국가 수준의 선전 활동을 전개했습니다.

그러나 13세기 전반 몽골 군대가 볼가강을 건너 키에프를 잿더미로 만들어 버리고 폴란드의 리그니츠에서 기독교도 연합군을 괴멸시키고 말았을 때 그들은 결국 사제왕 요한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냉엄한 현실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