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카자흐스탄은 곧 큰 명절과 즐거움의 분위기에 휩싸일 것이다. 카자흐스탄의 주민들은 4일을 쉬게 된다. 특히 수도의 주민들과 손님들은 4일간 각종 행사에 참가하면서 기억에서 스쳐버릴 수 없는 페이지를 남길 수 있다. 

카자흐스탄고려인들의 모국어는 남한이나 북한의 현대 표준어가 아니며 독특한 소수민족의 언어이다. 고려말은 가장 이상 세대의 고려인들의 언어이다. 고려말은 카자흐스탄에서 주로 구두로 가정에서나 일상 생활에서 이용되었다. 러시아 원동으로 이주한 한인들 그런즉 현재 카자흐스탄에서 살고 있는 고려인들의 선조들은 주로 다수로 함경북도 출신들이다. 러시아와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한반도의 가장 북부에 놓인 함경북도의 방언은 세 그루빠로 나뉘었다: 육읍 (부령, 경흥, 온성, 경원, 고성, 회령); 사읍 (네개의 읍 – 경성, 명천, 길주, 학성) 그리고 무산이다. 첫 그루빠 – 함경북도 주민들의 방언이 카자흐스탄 고려인들의 언어에 가장 가깝다. 세종대 왕 통치시기에 한반도의 가장 북부에 군대가 주둔하는 6개의 성 – 육진을 설립하였는데 후에 그것을 육읍이라고 칭하였다. 발전하는 표준어로부터의 장기간 고립, 소수의 남도주민들의 방언 섭취, 그것의 보존 그리고 결국에 가서 러시아어의 영향은 언어의 드문 현상 즉 고려말이 나타나게 하였다.

‘한국이 동족을 잊지 않았으며 우리와의 만남을 고대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정말이지 어머니는 영원히 기다리시는 분이 아닌가. 우즈베키스탄에 사는 고려인 2세 김용택(블라디미르 김) 작가는 ‘백년 후의 만남’이라는 글에서 이같이 말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민족 정체성은 조금씩 옅어져도 모국은 여전히 고려인 동포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주지시키는 내용이다.

카자흐스탄고려인 정주 80주년의 해에 이상 세대에 특히 큰 주목을 돌린다. 왜냐 하면 바로 그 분들이 복많은 카자흐 땅에서 어떻게 새 생활을 시작했으며 카자흐인들이 고려인들을 어떻게 친절히 받아들였으며 그 어려운 시기에 어떻게 카자흐인들과 어깨를 겯고 같이 일했으며 살아나갔는가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카자흐스탄은 체계적으로 발전되며 제기한 과업을 단계적으로 실천하고 있다. 나라가 내 세운 기본 목적은 엔.아.나사르바예브 대통령의 <카자흐스탄 2050>전략에 지적되었는데 즉 유력한 국가, 발전된 경제와 전반적 취업을 토대로 안전한 사회를 창설하며 세계에서 가장 발전한 30개의 나라에 카자흐스탄이 들어가는 것이다.

오늘 현재 유라시아 대륙에서 통합과정이 적극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러시아, 중국, 한국은 협동동작 기구를 설립할데 대한 자체의 발기를 내 세우고 있다. 이에 있어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사태에 각별한 주목을 돌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