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대 대선 재외국민 투표가 25일 부터 전 세계 116개국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카자흐스탄의  재외 투표소에서도 오전 8시부터 투표가 시작되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전승민 주알마티총영사는  이날 투표소에 나와 선거관리위원들과 참관인들을 격려하고 곧바로 투표를 마쳤다.

인종학 학자들은 모든 민족들의 정신적 문화에서 장례식과 제사와 연관된 의식과 풍습이 가장 보수주의적인 것으로 남아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카자흐스탄의 고려인들은 옛 장례-제사 의식의 많은 요소들이 최초의 형태와 내용을 잃기 시작하지만 마지막 시기까지 그들의 장례-제사 의식을 보존하였다. 보존된 많은 부분들이 최초의 사상적 및 세계관적 의미를 잃고 의례적 외형만 남았다.

브랸쓰크 삼림은 제 2차 세계대전 시기에 빠르찌산들이 적극적으로 활동한 곳으로 역사에 기입되었다. 그런데 이 삼림은 송이버섯이 많은 곳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비가 온 뒤에는 버섯을 따는 사람들이 삼림을 구석구석 헤맨다. 우리도 예외가 아니었다.

지난 25일 아스타나에서 진행된 카자흐스탄고려인협회 제 12차 정기 대회를 아주 중요한 회의로 이미 평가했다. 협회 관리위원회 위원들은 사회단체를 법인형태로 개조할데 대한 결정을 채택하였는데 이것은 사업에서 그들의 가능성을 확대하게 한다.

기자의 대열이 드물어졌다 – 수월하지 않은 기자의 직업에 반세기 아니 더 정확히 말해서 일생을 이바지한 훌륭한 인물, 김 꼰쓰딴찐 알렉싼드로위츠기자 더는 우리 곁에 없다. 그는 하나의 신문에 충실했다. 그는 1960년에 <카자흐스딴쓰까야 쁘라우다>신문사에 취직하여 근무하다가 1999년에 은퇴하였다. 그는 상기 신문에 수필과 평논을 게재하였는데 그것은 후에 그의 책 <양심앞에서의 고백>에 편입되었다. 그는 정든 이 신문사에 비판기사와 기자가 탐구한 자료들을 가지고 왔다. 그의 이름은 <카스쁘라우다>의 금서에 기입되었다. 꼰쓰딴찐 알렉싼드로위츠는 은퇴한 후에도 거의 10년을 신문사 원로회를 지도했다. 바로 원로회에서 한 그의 큰 사업에 의해 세대의 후계성, 카자흐스탄의 경외에서도 널리 알려진 재능있는 기자들의 전통이 보존되었다. 최근 년간에 그는 고향도시 딸듸꼬르간에서 자손들의 배려속에서 살았다. 그러나 그는 기자의 사명을 잊은적이 없었다. 그 시기에 꼰쓰딴찐 알렉싼드로위츠는 <마지막 인사>라는 책을 써서 발행하였는데 유감스럽게도 그것이 마지막 책이었다.

지난 일요일 알마티 시 컨서트실에서 <고향>합창단 창단 25주년에 즈음한 기념공연이 있었다. 며칠 궂었던 날씨도 그날 따라 맑아서 관람자들은 거의 여름 옷차림을 하고 공연장을 찾아왔다.소개자는 우선 합창단이 조직된 사연을 간단히 이야기 하였다. 25년전에 민족가요를 애창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민족가요의 운명에 대해 기슴아파하는 사람들이 몇몇이 모여 합창단을 조직할데 대한 의견을 나누었다. 발기자는 먼 사할린에서 오랫동안 교편을 잡고 있다가 알마티에 이주해 온 한 갈리나 하리또노브나였다. 그 자신이 노래를 유창하게 불렀다. 그들의 발기를 알마타 한국교육원 신계철 초대원장과 그당시 고려문화센터 황 미하일 회장이 적극적으로 받들었다. 재능있는 음악가, 작곡가 신 블라지미르 일리츠가 합창단을 맡게 되었다. 합창단에 의미가 깊은 <고향>이란 명칭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