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스탄에 80년간 거주하는 기간에 고려인 문학가들은 모국어로 된 책을 18권밖에 발행하지 못했다. 중앙아시아의 고려인 문학계에서 최근 10년기간에 자기 작품을 한국어로 쓰는 작가들의 세대가 완전히 바뀌었다. 1992년에 박 미하일 작가는 고려인 작가들의 작품을 게재할 것을 예고하는 <쁘로스또르> (광야)잡지의 서론에 아래와 같이 지적하였다: <…한국어로 쓰는 년로한 작가들이 몇 명밖에 되지 않습니다. 나머지는 러시아어로 창작하는 30-40대 그리고 그 다음 세대입니다…그런데 작가가 그 어떤 언어로 쓰는가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만일 작가가 그 무엇을 표현하고 싶으면 그가 아는 언어로 쓰는 것입니다.>중앙아시아 고려인 작가들의 작품을 외국에서, 우선 모국에서 발행된 것이 시대의 새로운 사조로 되었다.

지닌 10월 14일 심켄트시에서 카자흐스탄고려인정주 80주년 기념일을 맞이했다. 님부카자흐스탄주 고려인소수민족연합이 명절행사를 조직하였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을 받는 사단법인 겨레얼살리기 국민본부에서는 카자흐스탄 알마티에 중앙아시아본부를 설립하기로 결정하였다. 본부설립의 목적은 중앙아시아에 거주하는 고려인이 한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되찾고, 한국과 중앙아시아의 역사와 전통문화 속에서 상호 공존하고 화합하며 국가간 발전에 기여하고 인류평화증진에 이바지하기 위함이다.

고려창가 한 자락 불러달라는 취재진의 요청에 따라 김 따냐(59)씨와 세자매는 이 노래를 구성지게 불러주었다.  이 노래는 우슈토베 고려인들이 한-소 수교 후 모국방문을 가는 길에 지었다고 알려져 있다.  따냐씨의 노래 공책에는 소리나는 데로 적혀 있는 노랫말이 눈에 들어왔다. 그 중에서도   ‘고향 한번만 가봤으면 얼마나 좋겠소’ 라는 대목은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의 애환을 짐작케 하기에 충분했다. 고려창가를 잘 부르는 걸로 유명한 김 안나( 65세), 김 알료나(61), 김 따냐(59)씨는 이 노래외에도  어릴 때 부모님과 마을 사람들이 부르던 노래들을 취재진에게 들려주었다. 

황 라이싸 이와노브나가 지도하는 망기스따우주 고려인소수민족연합<조선>은 양에 아니라 질에 의지하여 어떻게 사업을 조직할 수 있는가를 뚜렷이 보여준다. 악따우에는 고려인들이 근 800명이 거주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기 소수민족연합은 주내에서 가장 적극적인 사회단체로 되여 있다. 사회단체가 소수민족의 과업만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전 지역의 생활에 참가하는 것이 사회단체의 성과의 비결들중 하나이다.

지난 10월 13일에 까라딸 구역에서 카자흐스탄에서 고려인 정주 80주년에 즈음한 행사가 진행되었다. 까라딸 구역은 1937년에 고려인들이 원동에서 강제이주되어 카자흐스탄에 온 첫 정착지으로 되었다. 바로 그러기에 이 고장을 비공식적으로 카자흐스탄고려인들의 조국으로 간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