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학계, 언론계, 정계 등 다수 전문가들의 평가에 의하면 북한의 비핵화를 중심으로 한 ‘빅 딜’의 첫 세트에서 젊은 북한 지도자 김정은이 이겼습니다. 두 번째로 가장 많은 점수를 얻은 인물은 한국의 문재인입니다. 결과를 보아 시진핑이 세 번째 자리에 섰는데 득점한 점수를 보아 그는 트럼프, 푸틴, 아베를 앞섰습니다.

나의 앞에는 황동훈 선생의 사진이 놓여 있다. 황동훈 선생과 그의 창작동료들이 연해주에서 <선봉>신문을 발간하기 시작했을 때는 내가 아직 세상에 태여나지도 않았다. 그러나 눈에 띠우지 않는 가느다란 실머리가 우리를 연결해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주인공 아르까지는 소련 사회가 강요하는 체제이념을 그대로 그림에 수용할 수밖에 없는 현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해 볼 수 없는 현실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위의 인용문에서 보는 화가 아르까지의 자조는 이와 같은 소련의 사회체제와 당국의폭압적 통제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드러낸 것이라 하겠는데, 소련 시절의 예술정책을대한 시각 또한 그러하다. 소련 예술계에는 “우리들의 삶을 그대로 복사하는 사실주의화가가 있고, 삶과는 유리되어 있는 전위주의 화가”가 있는데, 그러나 “전위주의 화가들한테는 그림 전시 기회가 주어지지 않”고, 그래서 이들은 생활이 어려워 “지하실에서지내고” 있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거의 한 세기의 역사를 가진 <선봉> - <레닌기치> - <고려일보>에 대해서 이야기 하려면 며칠이 필요할 것이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주인노릇을 하던 원동에서 1923년에 창간된 첫 '선봉'신문은 마치 송곳방석에 앉아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마음 편안할 때가 없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던중 1937년에 일본간첩으로 의심을 받던 고려인들이 스탈린 강제이주 정책으로 하여 몽땅 화물차에 실려 카자흐스탄과 중앙아시아의 기타 지역으로 오게 되었다. 이에 앞서 재능있는 기자들도 여러명이 체포되어 행방불명이 되었다. 농업부 부장 황동훈이 활자들을 궤짝에 넣어 숨겨서 크슬오르다까지 가져온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신문을 계속 발간하기 위해 많은 고려인 인테리들이 당기관을 드나들어 결국 1938년에 크슬오르다시에서 <레닌기치>로 개칭되어 발간되기 시작했다. 1978년에 신문사가 알마티로 이주하여 왔다. 나는 오늘 신문사에 취직하여 일하던 기간의 한 토막을 이야기 하려고 한다. 

대한민국의 박근혜 전 대통령이 “통일은 대박이다” 라고 여러 번 말한 일이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박근혜 전 대통령은 그것을 얻지 못했으며 자신의 정치적 출세도 억울하게 끝냈습니다. 민주당 출신 문재인 대통령은 이전 정권의 통치기에 비등점까지 올랐던 남북 관계를 현격하게 바꾸었습니다. 바로 문재인 대통령의 제의에 의해 <한반도 문제에 관한> 여러 차례 회의가 있었는데 그것은 몇 개월 계속되었습니다. 

부산시가 카자흐스탄과 교류협력을 위해  ‘2018 유라시아 청년대장정’ 3만리 여정에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