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마티에 이름있는 가수 최 윅또르의 기념비가 건립되었다. 기념비는 <바늘>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촬영했던 곳인 뚤레바예브 거리에 세워졌다. 기념비 개막식에 알마티 시장 바우의르잔 바이베크, 배우들과 가수들, 시민들이 참가했다.

<한 가정에서 산다>는 주 축제의 범위내에서 고려인 문화의 날이 진행되었다. 금년에 축제는 <루하니 잔긔루>의 기치하에서 진행되였으며 아스타나 창건 20주년과 빠블로다르주 80주년에 즈음한 것이었다.한민족의 다세기 문화는 아주 다양하고 조화롭다. 민족의상, 독특한 요리, 회화, 민족무용에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이 없다.축제는 화려인 카자흐민족춤 <샤슈>로 시작되었다. 다음 빠블로다르주 카자흐민족회의 부회장 올리가 니꼴라시나의 축사가 있었다.

지난 휴일에 비스켁에서 두가지 뜻깊은 사건이 있었다: 처음으로 CIS 고려인 사회단체들의 역사에서 두 상무위원회 즉 카자흐스탄고려인협회 상무위원회와 키르기스스탄고려인 사회연합 상무위원회의 상봉이 있었다. 그리고 공화국 국립 아카데미 고려극장의 <하나의 운명으로 묶이>라는 무대화된 대 공연이 있었다.

금년은 <고려일보>창간 95주년인것만큼 부득이 정든 신문에 대한 말을 하게 되며 신문의 역사를 신문발간의 중요한 업적에 참가하는 우리의 겸손한 노력과 대비하게 된다. 때로는 신문사에 들어 오는  기자-원로들이 말한다: <지금은 신문사에서 일하기가 좋지요, 여러분은 활자-케이스가 무엇이며 옵셋인쇄가 무엇인지를 모르지요? 그리고 온 종일 번역을 하고 아침까지 신문을 만드는 것도 모를 것이지요…그런데 우리 원로들은 현대 기자들이 원로들이 닦아놓은 정신적 시초로 풍부하다는 것을 평가하지 못할 것이다. 그 시초는 계속되면서 오늘 세기의 계선에 다가오고 있다. 우리는 자기의 역사를 소중히 간직하며 원로들과의 만남이나 소원했던 인터뷰를 소중히 여깁니다. 우리는 얼마전에 우연히 신문사에 들린 리정희 (넬랴 예고로브나) 원로기자와 만났다. 리정희는 현재 한국에서 거주하니 만나보기가 그리 쉽지 않다. 그는 1937년도에 강제이주되여 얼마후에 <레닌기치> (그당시 신문을 이렇게 칭했다)신문발간의 시초를 닦은 원로들과 함께 일했다.

온 세계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간의 역사적 회담을 지켜보았습니다. 회담으로 향하는 길은 수월하지 않았으며 때로는 회담이 진행되지 못할 것도 같았습니다. 그러나 결국 회담의 장소, 날짜, 시간, 그리고 의제들이 확정되었습니다.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 즉 영어로는 Complete, Verifiable, lrreversible Denuclearization (CVID)가 중요한 기본 문제였는데 미국은 이것을 평양에 요구했습니다. 대립되는 두 사회정치 체제를 구현하는 두 나라 지도자들은 월요일 싱가포르에 당도했습니다. 모든 우려에도 불구하고 정상회담은 진행되었으며 양측은 회담을 끝까지 진행하고 공동 선언문에 서명한 후 악수를 하고 헤어졌습니다. 

2015년 12월부터 오늘날까지 29명의 손님들이 우리 신문사를 찾아 왔었는데 6월의 첫 호에 소개하는 손님은 그들중에서 나이가 가장 젊은 사람이다. 리 이고리 꼰쓰딴찌노위츠 – 그는 카자흐스탄청년협회를 지도하는데 현재는 또 카자흐스탄고려인협회 부회장의 직책을 겸하고 있다. 리 이고리는 또한 카자흐스탄고려인협회의 26년간 존재이래 기록을 세웠다고 말할 수 있다. 그는 협회의 가장 젊은 부회장이다. 그런데 오늘 하고 싶은 것은 그 이야기가 아니다. 카자흐스탄청년협회는 아주 조직성이 높은 공화국 청년연합이라는 것을 확증하였다. 한국관을 방문하는 CIS 나라들, 남한과 북한 손님들은 항상 카자흐스탄청년협회에 대해 찬사의 말을 한다.  많은 손님들은 지어 카자흐스탄청년협회가 조직하는 이러저러한 행사에 대한 경험을 받아들이려고 한다.